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73

021) 10.11. 한정 판매!? 이어롭 피규어!

ㅡ는개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또박산에서 돌아온 능란은 소파에 늘어지려는 순간, 저의 포켓몬에게 붙잡혀 억지로 일으켜 서야 했다. 이제 좀 쉬려고 했는데? 억울하게 돌아보면 어느새 길쭉이 자란 빼미스로우가 부리로 무언가를 건넸다. “그으러니까……” 나보고 지금 이걸 하라는 거지? 능란의 시선에 나나는 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볼 때는 가장, 가장해도 솔직히 귀엽기만 했는데─실질적 가장은 당연히 밥주는 사람인 이몸 아냐?─진화하고 나더니 어딘지 모르게 아빠 같아졌다고 해야 하나. 지금만 해도 봐라. 포켓몬이 건넨 것은 웬 전단지였다. 『급구! 피규어 구매대리』라면서 알아보기 힘든 무지개빛 폰트를 사용한 내용은 구구절절한 나머지 읽기 어려웠지만 어렵게 한 자, 한 자 해석해보니 이어..

020) 10.11. 일하는 가장

ㅡ나나 진화 더보기 꽃가람숲 깊은 곳, 그 중에서도 물레방아 움직이는 호숫가는 작고 약한 포켓몬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이자 쉼터였다. 물을 얻는 것이 용이하니 다양한 풀타입 포켓몬들이 머물렀고 부드러운 흙과 풀 덕분에 벌레타입과 땅타입도 다양하게 모였다. 더 크고 힘 센 녀석들은 굳이 태양 아래 고스란히 노출되는 호숫가를 쉼터 삼지 않았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서 머무르다가 사냥을 할 때만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힘센 포켓몬의 등장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나몰빼미였다. 물레방아 꼭대기에 앉아 있던 새는 날카로운 눈으로 천적의 등장을 확인하고 뺌, 뺌, 휘파람을 불며 울었다. 그러면 옹기종기 모여 있던 포켓몬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사냥에 실패한 포켓몬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돌아가는 것이 이 땅의 맏이..

019) 가을바람의 꿈 飋夢 5

ㅡ부화로그 5 더보기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포켓몬은 성장이 빠르다고 한다. 야생에서는 진화하지 못하는 개체가 더 많지만 트레이너가 있으면 간단히 진화해버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포켓몬의 성장촉진제, 이렇게 말해도 될까? 이제는 통론이 되어버린 이야기처럼 트레이너 캠프의 포켓몬들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물론 알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지난밤, 알들이 일제히 부화하고 탄생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지. 능란의 알도 부화시기가 머지않았다. 처음 알을 받았을 때와 비슷하게 표면이 아주 얇으면서도 물주머니 대신 살얼음처럼 섬세한 구체를 능란은 조심스럽게 품었다. 온전히 알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약간의 충격조차 조심스럽다. 표면에 손가락을 얹으면 박동이 선명했다. 꼼실거리는 움직임, 미약한 웃음소리..

018) 가을바람의 꿈 飋夢 4

ㅡ부화로그 4 더보기 어느새 껍데기가 딱딱해졌다. 이 딱딱한 표면이 살얼음처럼 깨지기 쉬워질 때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곧 있으면 안에서 발차기도 해버릴 수 있다는 거다. 능란은 포대기처럼 만든 알주머니에 우르의 솜을 더 깔고 혹시라도 알이 떨어지거나 충격을 받지 않도록 두 겹, 세 겹 줄을 둘렀다. 애지중지하는 트레이너를 관찰하던 빠모가 어깨 위로 올라와 알을 톡 건드렸다. 그러자 에코처럼 알 안쪽에서도 톡, 반응이 돌아왔다. 벌써 이만큼 컸나, 놀라는 건 트레이너뿐. 겁 많은 포켓몬은 후다닥 도망가버리고 만다. 그래도 얼마 안 가 빼꼼 머리를 빼내고 다시 알을 보러 오는 걸 보면 많이 익숙해진 듯 싶었다. “요오, 그렇지. 역시 후속편이 궁금한 거지. 어서 오라구.” 천생 수다쟁이에 이야기꾼인 여..

017) 10.09. 반추反芻

ㅡ피엠 귀하 더보기 큰 괭이 하나, 작은 괭이 하나, 난데없이 이런 농기구 같은 게 어디서 난 거냔 물음은 하지 않는다. 여자에게는 늘 어딘가 비밀주머니가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긴 나무 봉을 만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봉술 자세를 취하려던 능란은 앗, 이게 아니지. 제 머리를 콩, 때리며 피엠의 자세를 관찰했다. 그러니까 손잡이는 이쯤에서 붙잡아서……. “서향 씨의 오두막 앞에 공터가 있었잖아. 거길 써도 된다더라고.” “오오. 그럼 당장 가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씩씩하게 찾아간 것은 좋았으나 펼쳐진 땅은 만파식적의 뒤쪽 밭보다도 크기가 커보였다. 어라, 이거 괜찮은가? 허리가 쭈뼛 서는 걸로 보아 보통 노동이 아닐 거란 예감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나. 옆 사람이 이미 밭 갈 준비를 하고 있는..

016) 가을바람의 꿈 飋夢 3

ㅡ부화로그 3 더보기 ──어라, 이야기 들으러 또 온 거야? 그럼 마저 이야기해볼까. 오늘의 산책은 는개의 밤바다다. 한 번 바람이 불 때마다 비리고 짠 내음이 훅 풍겼고 뒤이어 파도 소리가 철벅, 철벅 들려와 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드가 형성되는 곳이었다. 막 씻고 나와 뽀송뽀송한 머리카락으로 소금 알갱이가 묻어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여자는 모래사장을 폴짝폴짝 걸었다. 그 사이 알은 제법 묵직해져 있었다. 이제 표면을 건드려봐도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간신히 말랑말랑 물주머니 같은 알에 익숙해지던 참인데! 빠모가 배신감 어린 표정으로 알을 경계한다. 이쯤부터는 능란도 포켓몬을 타일렀다. 이제 조심해야 해. 알이 직접 깨고 나오기 전까지 우리가 먼저 깨버리면 안 된다는 거야. 알아들은 빠모가 능란의 ..

015) 10.07. 가을바람의 꿈 飋夢 2

ㅡ부화로그 2 더보기 숲의 밤은 마을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니 더욱 그럴 만도 했다. 몸이 더 식기 전에 야영지의 모닥불 앞에 가 포켓몬들과 알과 불을 쬐었다. 이럴 땐 역시 불 포켓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불같은 건 능란 스스로도 3초만에 피울 수 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물어와 줄 친구들까지 생겼으니 더욱이 편하겠지. 그런 이유로 포켓몬을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누구든 사랑해주고 말 것인걸. 이유 있는 맹목盲目이다. “여기선 어떤 아이가 태어나려나.” 누구는 힌트라도 받은 것 같은데 당당하게 전부 좋다고 해버렸으니 정말 짐작도 가지 않는 것이다. 서프라이즈일수록 궁금증은 부풀어만 간다. 불길이 일렁일 때마다 우르의 털색이 오렌지빛으로 물들다 돌아오길 반복..

14) 10.06. 가을바람의 꿈 飋夢 1

ㅡ부화로그 더보기 바람 한 번 불 때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 쌓인 낙엽 더미 아래로 새 생명이 움트기 위해 땅도 쉬어가는 이 시기를 능란은 제법 좋아했다. 뭐니 뭐니 해도 버섯이 맛있기도 하고, 이 뒤에 찾아올 침묵하는 겨울까지 식량을 잔뜩 비축해두는 일이 즐거웠다. 이런 시기에 맡게 되는 알이라니, 능란 자신이 생명을 덮는 낙엽 더미처럼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겠다는 책임감이 더 들 법도 하다.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것 같으니까 믿고 맡겨보도록 할게. 어떤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예뻐해 줄 수 있다고 했지?” “어떤 아이든 듬뿍 사랑해주도록 할게.” 부화기에 소중히 넣어진 알을 품에 받아 들고 능란은 힐쭉 웃었다. 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텐트로 돌아오자 어느새 셋으로 늘어버린 포켓몬들..

013) 10.05. 낭만을 아는 이에게

ㅡ슈가 귀하 더보기 현실성 없는 낭만과 현실성 없는 허세에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여자는 허풍이 심했다. 어떨 땐 모두가 깜빡 속아 넘어가도록 그럴듯한 허풍을 보였고 어떨 땐 듣자마자 ‘누가 거기에 속겠냐.’고 핀잔을 들을만한 소리를 했는데, 그렇게 핀잔이 날아오면 으핫, 웃으며 어수룩하게 상대에게 자신을 낮춰주는 게 요령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요령이 늘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제 앞의 소녀가 속삭이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낭만과는 아무래도 다르기만 했다. “응. 그러니까……”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한 차례 가을비가 지나고 기온이 뚝 떨어지거든 새벽 서리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툭, 툭 부서질지도 모를 나약한 생명들, 그것들이 올해의 마지막 향기를 내뿜으며 한낮의 태양 아래서 아름다..

012) 10.03. 매듭, 자격, 증명

ㅡ이치이 귀하 더보기 「매번 감사함다. 4대째명가원조할머니손맛 만파식적입니다!」 「4대 전에는 뭘 하고 있었는데?」 「글쎄, 봉술 도장이 아니었을까 싶단 말이지.」 「그럼 이 다음 5대째는 너야?」 「그건…… 또 모를 일!」 물론 도화무늬 기와집과 백산흑수 가문을 납작하게 치환시킬 수야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이란 게 그렇다, 어디로든 열어두어야지 않겠어? 적어도 이곳 캠프에서는 그랬다. 도전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해도 좋았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일촉즉발을 겪고 있었다. “소년, 백산흑수회의 사람인가.” 그전까지도 내내 험상궂게 짓던 표정이 순식간에 더 구겨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조차 잠깐이었다. 호흡 한 번이 지나간 뒤로 그는 도리어 이제껏 덮어쓴 모든 꺼풀을 집어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