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73

011) 10.02. 감사

ㅡ툰 귀하 더보기 차롱숲을 벗어나 숙소로, 숙소에서 다시 꽃가람숲을 가로질러 걸었다. 늘봄 한켠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대나무숲도 부란다를 필두로 한 판짱과 다양한 포켓몬들의 생태가 풍부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다님길의 다수 면적을 차지한 꽃가람숲은 규모부터가 달랐다. 는개까지 향하는 길의 주변으로 울창하게 자란 숲은 인도가 닦인 인근은 온순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포켓몬이 주로 다녔으나 조금만 민가를 벗어나도 부란다가 우스운 다양한 타입의 포켓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막 여행을 떠나는 트레이너에게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졌다고 하겠다. 이름도 어여쁜 꽃가람숲의 이명이 괜히 미아의 숲인 것은 아니었다. 그 길을, 심지어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로도 아닌 산길로 걸으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걷는 내내 능란은..

010) 09.30. 유구무언

ㅡ개인 로그 더보기 “나는 포켓몬 마스터가 될 거야!” “──엥?” “……은 농담, 으하핫. 그래도 한 번쯤 말해보고 싶었어.” “첫 배지라고 너무 기고만장해진 거 아니냐니깐. 바보 수.” “좀 좋아할 수도 있지. 그러는 란아, 넌? 이번엔 잘 안 됐지만……” ──금세 따라올 거지? ‘금세’, 지금 바로. 今時에가 줄어든 말로 금방이나 대번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4년쯤 지난 시간은 ‘금세’라고 할 수 있을까? 없다면, 능란의 자격은 어쩌면 일찍이 박탈된 지 오래인지도 모른다. 울창한 죽림 너머로는 포켓몬 배틀의 열기가 뜨거웠다. 쌀쌀해지는 가을 밤바람이 순식간에 익어버릴 정도다. 근성과 기백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환호와 탄식이 번갈아 나올 때마다 능란은 저도 모르게 목을 길게 빼다가 되돌렸다. 저 역시 ..

009) 09.30. 무근성 : 늘봄체육관 도전

ㅡ늘봄체육관 더보기 「Q. 능란 씨는 트레이너 캠프에 왜 왔어요?」 A1. 모모와 친해지고 싶어서~ 아직 이 녀석과 만난 지 얼마 안 됐거든. A2. 그러는 김에 아마추어 배지라도 하나 따볼까. 배지 하나쯤 있어야 친해진 것 같잖아. A3. 사실 예전에 도전했다가 번번이 지기만 해서~ 이번에야말로 따고 싶다는 거야. A4. 그런데 정말은…… ……왜 온 걸까? 이럴 거면. 【마음을 좀 더 강하게 먹도록 하세요. 진달래 씨를 이기고 오시라구요.】 팟, 하고 체육관 사방으로 조명이 켜진다. 차롱숲을 등진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짐 리더인 진달래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 도전자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겠지. 누가 2년이 넘도록 지긋지긋하게 아침밥 먹듯 도장 문턱을 넘나들었을까. ..

008) 09.30. 죽순 도둑을 쫓아내자

ㅡ늘봄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트레이너 캠프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모두가 공평한 출발선에서! 이런 모토를 따라 능란은 자신의 비상금 주머니를 집에 잘 두고 와야 했다. 몇 년을 소중히 모은 돈은 만의 하나 가족에게 들키지 않도록 집 뒤로 이어지는 또박산 돌무덤 어딘가에 숨겨놓았으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대신 캠프에서는 캠프만의 재화를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이 재화는 다시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의 일손을 돕는 형식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게 꼭 농번기의 품앗이 같아서 능란은 이 제도가 마음에 든 중이다. 과연 수리 박사, 화랑 토박이다운 수단이다. 그러나 첫 마을─엄밀히 말해 푸실은 튜토리얼이지!─부터 떨어진 의뢰가 능란으로선 손 댈 수 없는 것일 줄 몰랐다. “최근에 차롱숲의..

007) 09.28. 수리 박사님의 특훈!! -1-

ㅡ푸실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딩-동, 하고 벨을 누르자 문을 열고 나온 건 사람 대신 던지미였다. 익숙한 녀석에게 인사를 하며 주먹밥 하나를 끼워준다. 그 사이 연구소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던지미─, 손님은 누구지?” 그 말이 허락이라도 된 것처럼 능란은 태연하게 제 집처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요오, 수리 박사님. 연잎버터죽통밥 배달이라고.” “어라, 이번엔 시킨 기억이 없는데…….” 그제야 집주인도 머리를 긁적이며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도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잘 보면 빈틈 하나 없는 자세인데도 불구하고 느슨한 저 표정 탓인가. 그의 직업이 ‘박사’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꾸준히 나왔다. 아니아니, 저 펄럭이는 옷의 안쪽을 주목해보라니까. 역시 박사님도 저번의 정크 트레..

006) 09.26. 방방곡곡 파도치리라

ㅡ라한 귀하 더보기 “그야, 이리도 생생한걸요.” “그거 나 부끄러우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 배경으로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물음표는 대나무통에 쏘옥 넣어버리고 시치미를 뗀다. 아니라면 내가 꼬렛 구멍을 찾든 라한 씨를 얼렁뚱땅 넣어버리든 하는 수밖에 없었을 거야. 애써 괜찮은 척 내려놓은 찻잔을 들었다. 어째 목이 탔다. “걱정할 것 없다고 머리로는 알면서도 왠지 걱정해버리고 싶단 말이지~ 친구란 아무래도 간섭해버리고 싶은 자리인 모양이야.” 슬프게 하려는 게 아니었다는 말도 그렇다. 당신의 본의가 아니어도 속상해지고 마는 건 평온한 얼굴 너머로 어딘지 모르게 당신이 고독해 보인 탓이다. 언젠가 했던 말을 되풀이해보자. 화랑지방은 애향심 깊은 주민들이 많았다. 푸실마을의 도화무늬 기와집이 그랬고 늘..

005) 09.25. 올가미

ㅡ린도 귀하 더보기 ──그래, 이 작은 빠모는 주인의 애증과도 같은 인연에 아무런 상관도 없었으며 오로지 그 주인 되는 자의 핑계에 어울려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라도 들으란 것처럼 신나게 떠들고 다니지 않았는가. 「캠프에 참여한 이유? 모모와 친해지려구.」 그러나 반푼도 되지 않는 허울이 통하는 건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더는 그 조그만 몸뚱이에 숨을 수도 없었다. 익숙한 흙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졌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주인이 걱정스러웠는지 빠모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으앗, 간지러. 모모 이 녀석. 마트 바닥에 누워 떼를 쓰는 어린애도 아니고 나잇값도 못 하는 여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퍽 서늘하였으나 쌀쌀맞진 않았다. 애당초, 쌀쌀맞을 거였으면 굳이 납작한 빈나두가 된 그에게 굳이..

004) 09.23. 선배의 경험담

ㅡ르나르 귀하 더보기 “으핫, 비법 소스라니.” 그의 맞은편에 아주 자리를 깔고 와 도시락통의 빈자리에 교자를 쏙쏙 더 넣어주었다. 반대로 자신의 교자 접시에는 잘 튀겨진 닭튀김을 쏙 올렸다. 그 달콤아 모양은 주먹밥은 뭘로 분홍색을 표현한 건지 궁금한걸. 가게에서는 색을 낼 때 주로 과일이나 풀을 썼다. 분홍색이면 차조기 잎이려나. 산딸기를 으깨도 좋겠지. 레시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음식이 비워지는 게 순식간이었다. 싹 비워진 접시를 옆으로 밀어둔 능란은 그 자리에서 찻물을 올렸다. 역시 불 타입이 있으면 좋겠어, 가벼운 푸념이 지나간다. “식후에는 역시 따뜻한 차인데, 르나르 씨는 차 좋아해?” 정작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미뤄둔 채였다. 퍽 베테랑 트레이너인 척 군 주제에 바로 답이 나오지..

003) 09.21. 시기적절

ㅡ리치 귀하 더보기 화랑지방은 유독 애향심 강한 가문이 많았다. 나고 자란 마을에 다시금 뿌리를 박고 자식을 낳고, 다시 그 자녀가 자라서 기둥을 세우며 몇 대를 이어져 오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풍습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화랑지방을 이뤘다. 능(能)가는 그 중 하나였다. 오랜 선조가 전에 없던 글자를 만들었고 거기에 ‘능하다’는 뜻을 부여하여, 그렇게 만들어진 표의가 누구나 알아들을 뜻으로 굳어져 가문이 이어지도록 그들은 푸실마을에서 긴 세월을 지켜왔다. 분명 몇 대인가 더 위는 봉술에 능한 가문이었지. 지금은 할머니의 어머니인지 할머니의 할머니인지 아니면 그보다 위인지, 사실은 위로 올라갈 것도 없이 할머니가 새 역사를 세운 것인지 요리에 능한 가문이 되었다. 다음에는 무엇이 자랑이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