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73

031) 10.20. 꽃과 태산

ㅡ이치이 귀하 더보기 화랑지방에서도 긴 세월을 자랑하는 능가는 가문의 대표가 바뀔 때마다 그 성격은 조금씩 달라질지언정 절대로 변치 않는 부분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도화무늬가 새겨진 기와다. 마을에서도 동편, 넘어가면 해안절벽이 나오는 그 언저리에 지어진 으리으리한 기와집은 수리와 보수, 증축을 이어나가면서도 그때마다 쌓아올리는 기와에는 반드시 도화무늬가 들어가도록 하였다. 현재의 도화무늬 기와집은 특히 몇 대 전인가 심어둔 오얏꽃과 복숭아꽃이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 되었는데 때문에 능란은 꽃 피는 그 시기를 어린 시절부터 늘 손꼽아기다리곤 했다. 는개마을은 가온시티가 지금처럼 번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화랑지방으로 들어오는 배가 제일 먼저 닿는 곳이었다. 그야 물론, 무역선들도 이..

030) 10.19. 첫째의 자리

ㅡ모모 진화 더보기 용건을 마친 형제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 질 녘이 가까운 시간, 능란은 형제를 배웅하기 위해 도시의 외곽으로 나왔다. 휘황찬란하던 건물의 조명을 벗어나자마자 응달진 거리는 적막이었다. 공중날기 택시를 부르는 형제를 지켜보던 능란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갑자기 불러냈는데 먼 길 와줘서 고맙단 거야.”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딱딱한 인사치레를 하고 그래.” 우리 사이에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정말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녀석이다. 우리가 그런 표현을 하기에는 그간 조금 어색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그마저도 전부 능란 혼자 의식해서 어려워하던 것뿐으로 그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던 걸까? 생각이 깊어지려는 찰나 형제가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딱! 하는 경쾌한 소..

029) 10.18 가담항설街談巷說

ㅡ가온시티 아르바이트 with. 라한 더보기 다양한 형태의 배틀을 즐기는 풍조로 유명한 화랑지방이었으나 그런 이곳에서도 배틀 팰리스라는 것의 존재는 낯설고 새로웠다. 하나지방의 배틀 서브웨이나 칼로스의 배틀하우스와 비슷하겠거니 하면서도 화랑 제일의 도시인 가온시티에 뚝딱뚝딱 지어지는 새하얀 성은 한편에서는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굉장한 이질감을 풍겨 지켜보는 뭇사람들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질감의 이유 중 하나로는 새로운 가온의 상징이 될지도 모를 건물을 지어 올린 자가 화랑 출신이 아닌 타 지방 사람이라는 영향도 없진 않을 것이다. 배틀 팰리스의 상품으로 화랑에서 인망 높은 전 사천왕이자 포켓몬 박사, 수리를 내놓은 것은 때문에 사람들의 거부감을 잠재우기 적절하고..

028) 10.17. 격류! 우정의 비치발리볼 대회

ㅡ는개마을 아르바이트 with. 린도 더보기 “40-15! 매치 포인트!” “우오옷, 저쪽 페어 엄청나다고.” “보통 실력이 아닌데? 사실은 어느 지방의 유명 비치발리볼 선수라든지.” “우효~! 이런 시골 마을에서 프로선수 등판? 놓칠 수야 없지.” “저 시선 교환을 봐. 분명 10년 동안 함께 해온 파트너일 게 틀림없어.” 하나도 맞는 게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다 틀릴 수가 있는 걸까. 어느 지방의 유명 선수도 아닐뿐더러 프로도 아니고 10년을 해온 파트너도 아니며 심지어 시합에서 린도의 기여도는 많지 않았다. “린린, 다음 서브가 오면 내가 받아친 다음에 왼쪽으로 한 걸음만 이동해달란 거야.” “알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두 사람을 무슨 끈끈한 영혼의 파트너 정도로 해석해서 쑥덕거리..

027) 10.16. 언어의 곡선

ㅡ나비란 귀하 더보기 화랑지방은 꼭 세 개의 날개가 풍차처럼 휘어진 지형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남쪽과 북쪽은 외곽으로 갈수록 산세가 험하고 서쪽으로는 사막이 펼쳐져, 바다와 맞닿아 다른 지방과 교류가 활발하면서 지대가 평탄한 다님길── 그 중에서도 가온시티가 가장 번화한 도시로 성장한 것은 필연과도 같았다. 그래도 과거에는 이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모래톱길의 아토시티도 풍부한 수원을 낀 채 독특한 축제문화를 가지고 큰 도시를 꾸려 화랑지방의 이대도시라고 하면 아토와 가온이 비등비등하였더라는 게 능란이 가진 어릴 적의 기억이다. 그랬던 가온시티가 돌출되기 시작한 건 아마 쿠로테츠의 힘이 강해지면서부터였을까. 다양한 타 지방의 기업들이 들어오고 는개마을로 갈 물건들까지 전부 가온..

026) 10.13. 인심난측人心難測 : 늘봄체육관 도전

ㅡ늘봄체육관 도전로그 더보기 처음 늘봄체육관의 문을 두드렸을 때는 15살이었다. 트레이너 스쿨을 갓 졸업하고 쌍둥이와 나란히 도전에 임했다. 그 순간의 심정은 떨림과 흥분, 기대감. 이제껏 스쿨에서 공부한 것을 뽐낼 수 있다는 설렘과 그간의 로드 트레이너와 겨루던 것과 다르게 ‘시험받는다’는 프레셔가 주는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임했다. 결과는? 깔끔한 패배였다. 하지만 뭐, 질 수도 있지. 고작 한 번의 패배 갖고 기가 죽진 않았다. 그야 쌍둥이는 이기고 저만 져버린 것이 분하긴 했지만 분한 감정이야말로 다음에 더 잘하고 싶은 원동력이 아닌가. “바로 내일 또 도전할래.” 능란은 기충전을 사용했다. “내일은 응원하러 갈게.” 능수가 응원하기를 사용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줄 알았다. 결과는 또 패배였다..

025) 10.13. 고향은 어디?

ㅡ꽃가람숲 더보기 “위위, 꽃가람 숲으로 가자.” 꽃가람 숲이란 단어에 나나의 시선이 쫑긋해졌다. 당연히 너도 가야지. 다 같이 갈 거야. 웃으며 능란은 조금 흐린 하늘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당장에 늘봄체육관을 앞두고 하루종일 훈련을 해도 모자랄 판에…… 싶었지만 나비란이 말한 것처럼 상대 스라크의 실력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기 때문일까.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때마다 객관적인 지표보다는 공포가 앞서곤 했다. 이래서야 영, 혀를 차고 난 다음엔 기분전환이었다. 는개에서 태어난 음뱃은 아직 자신의 고향이 어딘지 몰랐다. 이렇게 따지자니 정작 알이 생겨난 장소가 꽃가람숲이 맞는지도 불확실한데 그렇다면 알이 부화한 는개가 고향이 맞나? 아니아니, 역시 고향은 꽃가람숲으로 해. 여기 좋잖..

024) 10.12. 동행同行

ㅡ모모 진화 더보기 “모모는 나랑 있는 게 좋아?” 작고 어린 빠모가 근 몇 달 간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이라면 단연코 이것이다. 페라페처럼 인간의 말을 따라해 울 수 있다면 “좋아?”, “좋아.” 제일 먼저 이 말부터 소리 낼 수 있었겠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전에 물어보는 말의 뜻은 무엇인지 인간이 낯선 빠모는 다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한 가지 습득한 것이 있다면 저런 말을 할 때 트레이너를 꼬옥 안아주는 것이 아주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조막만하고 따뜻한 털뭉치가 목을 끌어안고 뺨을 부비면 미약한 정전기가 파직거리는데도 아랑 곳 않고 트레이너는 기쁜 듯 마주 안아주었다. “나도 좋아, 너랑 있어서.” ──그래도, 내가 싫어지면 언제든 가버려도 돼? 빠모는 여전히 트레이너의 말을 다 이해..

023) 10.12. 충만한 애정

ㅡ배배 진화 더보기 화랑지방의 1번을 부여받은 도로는 향수가 느껴지는 느긋한 밭길이 좌우로 펼쳐지는 평화로운 길이었다. 인접해 있는 늘봄마을까지 연결되는 길은 포장조차 되지 않아 흙이 고스란히 보였지만 덕택인지 인간만큼이나 수많은 포켓몬의 발자국이 남기도 하는 곳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건 역시 다양한 벌레타입과 풀타입 포켓몬, 간혹 꼬렛이나 탐리스처럼 작물을 탐내고 내려오는 녀석도 있었고 가끔 인접한 꽃가람 숲에서 튀어나왔는지 배루키나 이어롤도 보이곤 했다. 대부분이 인간친화적으로 크게 난폭한 녀석은 없었는데 그래도 가끔씩 또박산에서 내려온 링곰이라든지 차롱숲의 부란다가 힘자랑을 해서, 그럴 때면 사람들이 힘을 합쳐 포켓몬을 몰아내기도 했다. 그러면 그제야 조그마한 야생 포켓몬들은 마음을 놓는 것이었..

022) 10.12. 성숙한 인간으로 가는 길

ㅡ마메 귀하 더보기 왜 그랬어? 라는 질문에는 늘 답을 하기 어려웠다.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모든 자신의 마음에, 모든 자신의 행동에 사람들은 모두 명쾌하게 답을 내리고 사는 걸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반대로 어째서 나는 그러지 못하지? 생각의 꼬리는 늘 자기 비하로 치달았다. 왜 그랬어? 그럼에도 다시 한번 그 질문에 답하자면 결국은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저를 쫓아오는 이들을 가장 손쉽게 떨쳐내는 방법만 그 몇 년간 익혔다. 무엇인지 아는가? 쫓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런 기대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나는 응원할 시간이 아까운 사람이라고 스스로의 가치를 땅에 처박는다. ──그래 놓고 사람들이 돌아서면 뒤돌아보고 마는 멍청한 인간. ‘나는 나를 좋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