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ndes : Prelude 32

011. 긴급 점검

풍덩, 누군가 호수에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누구? 에단? 왜 안 나오지, 저 녀석? 호수가 잔잔한데? 그 목소리들을 들으며 카르테는 호수 바로 앞까지 달려왔다. 에단이 호수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경위는 들었다─체이서의 케이크를 피해서, 라고 했나─. 거기에 카르테의 책임은 없다. 그러나.「아무리 팔을 이어붙이고 기계를 고쳐도 이후에 재활까지 신경 써야한다는 거 알아 몰라! 모르면 지금 알고!」“에단의 입수 시발점으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구조합니다.”한 번 더 풍덩, 호수에 물보라가 일어났다.폭설이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겨울이었다. 며칠 전에는 호수 가장자리가 얼 만큼 기온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날씨는 호수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쇼크사를 일으킬 수 있다. 카르테는 그를 ..

010. 기억의 파편, 하나

【데이터 정리에 들어갑니다.】・・・「얘.」ST-C-2908LZ의 통상 업무는 서류 작업이다.「거기 얘.」휴전 전까지만 해도 통상 업무라 함은 최전선에 나가 제노나 돌연변이 등과 전투를 벌이는 일이었지만 대침묵, 이어 휴전, 가동 중지,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ST-C-2908LZ는 『평화로운 세계』란 곳에 떨어지게 되었다.「거기 빨간 애.」「? 부르셨습니까.」「응, 그래. 너 말야. 잠깐 이리 와 봐.」고작 5년, 하지만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ST-C-2908LZ는 회사의 재산이 아닌 직원으로 등록되었고 손목에는 섹터의 거주민이란 증명증을 차게 되었다. 전투에 나가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고 때때로 출장을 다녀왔다.「이거 먹어볼래?」눈앞에 내밀어진 것은 가운데 구멍이 뚫..

009. 분실물 찾기 시즌

: 카인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나 무언가 찾고 있소, 라는 기색을 온몸으로 내뿜는 소년을 발견했을 때 카르테는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 기시감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실제로 여러 번 겪은 일이다. 찾는 대상, 찾는 물건만 달라졌을 뿐이지.최근 다들 뭘 자꾸 잃어버리는 걸까. 10섹터의 바람에는 깜빡하는 성분이 있는 걸까. 진지하게 의문을 품으며 카르테는 상대에게 다가갔다.“카인.”“응~?”“찾는 것이 있다면 돕겠습니다.”부름에 대답만 하며 여전히 바닥에 코가 닿을 듯 낮은 자세를 하고 두리번거리던 소년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리를 피고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와 대화할 때면 몇 번이나 생각한 점이지만 늘 생생한 표정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갑판 위에 떨어진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아, 좀 틀린 비유..

008. 반항기?

: 슈마커 크로넨보그 「파업」두 글자가 바닥에 적혀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글자가 아니다. 손가락 한 마디가 될까 말까한 작은 사이즈의 무언가들이 모여 만든 글자였다.「탈출」, 「자유」그 옆에 다른 글자들도 보인다. 글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카르테는 역시 그것이 네오 모델─슈마커 크로넨보그라고 아직 소개 받지 못했다─에게 속해 있던 꼬마 로봇들임을 확인했다.“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네오의 분신.”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해 말을 걸자 누워서 글자를 만들고 있던 꼬마 로봇들이 통통 튀어 오르며 불만을 표한다. 어째서 불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카르테는 불만스러운 꼬마 로봇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한 뒤 표현을 정정해 보았다.“네오의 부하.”이번에 꼬마 로봇들은 불만을 표..

007. 근접 전투 평가

번호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린다. 제법 일찍 도착하였는지 카르테의 번호표는 상당히 앞순이었다. 이왕이면 앞선 사람들의 표정이나 들려오는 소리 등을 통해 표본을 모집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미리 안내 받은 시험의 순서를 떠올렸다.이번 시험은 전투 능력을 평가받는 것이었다. 그야 아카데미에 입학해 학생 신분이 된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対) 제노, 혹은 돌연변이를 상대하기 위한 군인을 양성하는 게 목적인 곳이다. 특히 군사학부라면 전투 능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카르테에겐 대단히 다행인 일이었다. 전투만이라면 다른 걱정 없이 임할 수 있다.번호가 불려 안쪽으로 들어간다. 들어간 안쪽은 동그란 원형 경기장 같은 곳으로 반대편 입구에서 대련용으로 제조된 것으로 보이는 로봇이 한 체..

006. 짹짹 미션

「빵조각보다 제대로 된 모이를 주는 편이 좋지 않아?」이야기는 그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한다.6개 세트의 도넛을 부담스러워하는 카르테를 (겨우) 알아차려준 사장님은 대신 지나가다 카르테가 보이자 도넛 하나를 그냥 쥐어주었다. 이건 모양이 안 예뻐서, 이런 건 판매할 수 없거든. 이라는 이유가 붙었지만 카르테의 눈에 그 형태는 판매 중인 도넛과 크게 차이가 있지 않았다. 굳이 따지라면 5% 정도의 함몰. 하지만 그 정도라면 판매 중인 도넛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흠이었지만 굳이 떠안겨주는 사장님의 성의라는 것을 넘기지 못하고 카르테는 얌전히 도넛 하나를 받았다.그러나 직접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안드로이드는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 카르테는 먹는 행위를 모방할 수 있었지만 음식물은 안쪽..

005. 직업 체험

“오늘도 왔네, 아가씨. 한 박스 또 사가겠어?”“아뇨. 한 박스는 무리입니다.”폭설이 내린 다음 날이었다. 어쩐지 1섹터를 벗어나고도 1섹터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던 눈들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거리를 걷던 카르테는 또 다시 도넛을 파는 가게 앞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넉살이 좋은 아주머니였다. 전쟁 당시에 팔 한쪽을 사고로 잃었다고 했나. 기계의 팔을 가리지도 않은 채 태연하게 도넛반죽을 주무르고 호객을 한다.“우리 집 도넛은 이 팔 힘이 좋아서 맛있는걸.”이곳은 그런 곳이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아주머니에게 붙잡힌 카르테는 또 도넛을 사러 왔냐며 이런저런 질문을 들었다. 아뇨, 맛 데이터는 이미 수집했으니 더는 필요가……. 이런 맛있는 걸 음식 섭취가 의미 없는 그녀가 또 먹어버려선 아까운 ..

004. 도넛

: 마루스 이바노프 10 섹터에서의 첫 구매 기록은 도넛이 되었다. 카르테는 오늘이 마침 이벤트라는 사장의 말에 넘어가 얼결에 6개들이 박스째 사버리고 만 도넛 상자의 안을 물끄러미 살폈다. 6개씩이나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음식의 섭취란 불필요한 것이니까. 그럼 이걸 어떻게 할까….볕이 좋은 곳에 적당히 앉은 카르테는 일단 초콜릿 코팅이 된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좋은 재료를 써서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훌륭한 맛이었다─, 하나는 잘게 쪼개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던 새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4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회사였다면 인간인 직원들에게 주었을 테지만……, 이 훌륭한 도넛을 카르테가 전부 먹어버리기엔 지나치게 사치스럽다. 좀 더 먹는 보..

003. 싸움법?

──정신을 차렸을 때 카르테는 이사벨 크림슨과 마주 앉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지나가다 불려져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을 듣고, 어느샌가 마치 뇌물처럼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아마도 음료수 캔. 캔과 이사벨 크림슨을 번갈아 응시하던 카르테는 일단 상대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였다.“이곳에는 수많은 강자가 있으리라 생각했었죠.”강자……. 아무래도 적침에 대비하여 군인을 육성하기 위한─이라고 카르테는 이해하고 있다─곳인 만큼 실력자들이 모인다는 점은 틀림없다. 잠자코 한 번 끄덕였다.“그렇다면, 그것은 그대도 마찬가지.”그대도……?뒤이은 말에는 머리카락을 묶은 방향으로 고개가 조금 기울었다. 그녀가 말하는 강자의 기준에 카르테는 부합할까.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

002. 탐색

이른 아침부터 섬을 한 바퀴 돈다. 그리 넓은 섬은 아니었기에 첫 날 왔을 때도 전반적인 지형 파악은 끝냈지만 오늘은 좀 더 세세한 관찰을 위해서였다. 평등, 중립, 그런 걸 내걸은 지역이기 때문일까. 이곳은 잠깐 돌아다녔을 뿐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인구가 자유롭게 길거리를 다녔고 빈부 격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1 구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잠깐 고향─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과 지금 밟고 있는 땅을 비교하던 카르테는 나중에 그 비교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10 구역은 평등과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까지 도달한 자들만이 누리게 해주겠다는 듯 지극히 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