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루 49

필름이 돌아가는 건너편

: 루 모겐스 사랑이란 감정을 소리로 표현해내는 것이 그녀는 여전히 경이로웠다.앞으로도 쭉 그녀에겐 경이롭고 놀라우며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것으로 남을 것이다. 익숙해지는 순간 제가 저로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토록,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사랑해, 루.”간절함을 입에 담는 일은.・・・마르지 않은 나뭇결의 냄새가 선명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벽난로 불길이 두 사람이 앉은 소파까지 닿아옴에도 그 집은 여전히 젖은 공기와 새집 냄새를 풍겼다. 직접 고른 목재, 손수 칠한 벽, 손으로 훑어가며 시공이 끝난 걸 꼼꼼히 확인하였는데, 가시지 않는 풋내가 아직 이곳이 낯설기만 한 마음을 반증하는 것 같았다.“이리 와, 에슬리.”기묘한 건 그 모든 낯섦이 먼저 가 손을 내미는 그의 존재 하나로 아무렇지 않게..

with.루 2020.04.19

미친 과학자와 악마와 동화책

: 루 모겐스 고요한 밤이었다. 짙게 깔린 먹구름이 달마저 가려 그림자가 생길 여지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밤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려는 걸까. 아직은 마른하늘에서 천둥소리부터 우렁차게 들려올 즈음 번개보다 먼저 번쩍, 하고 바닥의 마법진이 빛났다.창밖으로도 번쩍하고 보일 만큼 환한 빛이었다. 수많은 책과 플라스크와 양피지와 잉크 냄새로 가득한 연구실에서 유일, 깨끗한 바닥에 그려진 그것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법진보다 어떤 복잡한 계산식에 가까웠다. 빼곡히 적힌 계산식은 어쭙잖은 지식으로는 읽어내는 것보다 무리였지만 만약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본다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존경과 감탄,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그거 꼭 읽어야 해? 조금 부끄러운걸.)(쉿!)정녕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영역..

with.루 2019.10.31

더없이 많은 사랑을 내게

: 루 모겐스 *기억해, 루? 그 밤을.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해.그 날이 있고부터 여전히 꿈속에 사는 것처럼.* 그 날은 말이지.하루 종일 엄청 긴장해서, 좀처럼 진정하지 못해서어쩌면 루가 보기에도 이상했을지도 몰라.한편으로는 이상할 만큼 차분하고 덤덤해서,꼭 이미 전부 끝난 것처럼 말야.그래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기도 했던 것 같아.그 날의 내가 루의 눈엔 어떻게 보였을까.평소랑 같았을까? 조금 옛날이야기부터 해보자.좋아한다는 말은 하나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어. 그야 언제나 루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동시에 엄청나게 엄청 새삼스러운 말이기도 했어.아무렇지 않게 “나도 좋아해.” 하고 말했지만 내 좋아해는 루의 좋아해와 달랐으니까,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어.루에게 친구로 있겠다고 해놓고 한 순간도 루의 ..

with.루 2019.10.07

살아줘

: 루 모겐스 *주 의* 이어지는 로그는 백결 님의 coc 시나리오 '단 한번의 믿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 * 이번엔 바라는 대로 되었어?바라던 대로 당신을 봐주었을까?틀리지 않고 나를 위하고 당신을 위하는 선택을. * *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눈발이 날려들었다.“지금부터 루 모겐스를 참수형에 처한다.”피의 향기, 사람들의 절규, 아비규환인 그 사이를 유유히 흩날리는 송이송이 눈발이 펼쳐지는 광경을 꿈결처럼 만든다.「나를 믿어줘서 고마워.」우뚝 선 두 귀의 왼쪽에서는 사명감과 충성으로 뜨거운 목소리가, 다시 오른쪽에서는 마치 영원의 서약이라도 하듯 열없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에도 그녀의 의사는 없었다. 재판장에 오른 순간부터 그랬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with.루 2019.09.05

목욕 후의 풍경

: 루 모겐스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안쪽을 가득 채웠던 수증기가 넘실넘실 거실로 퍼졌다. 촉촉하고 따뜻한 공기는 소파에 앉아 뒹굴거리던 에슬리에게까지 닿아 자연스럽게 재채기가 나올 듯 코끝을 간질였다.나도 씻어야 하는데……, 생각만 하면서도 소파에 파묻히듯 기댄 자세가 편해 쉽사리 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그런 그녀의 눈앞으로 젖은 멍멍이가 지나갔다.정확히는 구부정한 자세로 덥수룩한 머리카락까지 푹 젖어 물기를 뚝뚝 흘리는 거대한 멍멍이, 를 닮은 애인.허리의 끈도 제대로 묶지 않아 아슬아슬한 목욕 가운 한 장만 느슨히 걸치고 카펫 위로 뚝뚝, 제가 어딜 돌아다니는지 발자취를 알리듯 물방울을 떨어트리며 어슬렁어슬렁 걷는 저 사람. 어디로 보나 고의성이 다분했다.그도 그럴 게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with.루 2019.09.05

Fill the Happiness, with me Darling.

: 루 모겐스 성급한 봄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내딛은 발아래의 잔디에 에슬리는 당장 신발을 벗어던지고 싶어졌다. 위로는 부서지는 노란 햇살, 아래로는 잘 마른 풀과 꽃, 밤새 내린 잔설이 아침의 찬 공기로 반투명하게 얼어붙었던 이트바테르에서 고작 반나절 떨어진 곳에 왔을 뿐인데 이렇게 공기가 다를 줄은 몰랐다. 물론 그 반나절의 이동에 워프게이트가 끼어있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이트바테르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오면 나오는 제국 제일의 항구도시, 폴라리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휴양지로 유명한 작은 섬으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새벽부터 출발한 여행은 점심나절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루, 이것 봐. 발바닥이 간질간질해.”“벌써 벗은 거야? 정말이지.”모처럼 신었던 구두는 두..

with.루 2019.02.18

당신이 나의 중심

: 루 모겐스 ※ [coc 세상의 중심에서]의 스포일러가 있는 로그입니다. 미플레이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멋진 원본 시나리오는 여기 “생일 축하해, 루.”이곳은 노르웨이의 호텔. 오늘은 12월 14일로 그의 생일입니다. 그의 생일을 기념하며 오로라를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가요. 오늘의 오로라 지수는 6으로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펄럭이는 오로라를 목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색으로 반짝이는 빛의 장막은 그 숭고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으로 신의 옷자락이라 불리기도 한다네요.──신의 옷자락. 정말 신이 있다면, 신의 옷자락에 닿을 수 있다면,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요.“신은 존재해. 하지만 우릴 위해 존재하진 않지.”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는 빌지도 않습니다.이곳은 노르웨이의 호텔...

with.루 2018.12.31

메리 크리스마스

: 루 모겐스 재미난 꿈을 꾸었다. 만난 적 있을 리 없는 제 어린 시절과 그의 어린 시절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풍경이라는 아주 재미난 꿈. 꿈이어서 그런 걸까, 있을 수 없는 일을 재현해두어서 그런 걸까.한 가운데 우뚝 선 높은 전나무, 전나무를 가운데 두고 해와 달이 동시에 빛나던 하늘, 반짝반짝하게 내리던 눈은 만져도 녹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게 여러모로 지나치게 인조적이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이제껏 겪은 수많은 이상한 일들에 비하면 한참 즐겁지.남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건 별로 즐겁지 않았지만 커다란 전나무를 트리로 바꿔나가는 일은 즐거워서 의욕을 보였다. 아무것도 장식되지 않은 심심한 나무에 흰색과 빨강색이 엿가락처럼 얽혀서 지팡이 모양으로 굳은 캔디케인, 빨강, 파랑, 금색, 은색, ..

with.루 2018.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