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루 49

별과 내가 축하해줄게

: 루 모겐스 ー─유성우가 내린대, 에슬리.그렇게 말하며 루가 가리킨 날짜는 그의 생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가만히 시선을 두자 응? 하고 유한 미소가 돌아온다. 그 표정에서 생각을 읽어내기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지, 본인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 일을 멋대로 짐작하려는 이쪽의 잘못이다.“루의 생일이네.”그래서 에두르는 대신 묻자 그제야 떠올렸다는 듯 긴 눈썹이 가볍게 율동하며 벌써 그렇게 됐나. 짧은 반문을 들려주었다.그러게, 벌써잖아. 그에 동의하며 에슬리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작년엔 케이크를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었지. 어떤 걸 만들어줄지 어떻게 해야 맛있는 걸 완성할 수 있을지 오래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돌아온 올해다. 올해는 뭘 주면 좋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물..

with.루 2018.12.14

사랑에 이르는 병

※ 이하의 로그는 inSANe 시나리오 [__에 이르는 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션의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은 클릭하지 말아주세요. : 루 모겐스 눈앞에서 인간이 재로 변해버렸다. 방금 전까지도 대화를 하고 따뜻한 몸을 하던 인간이 한순간에 아무런 열도 갖지 못하는 재가 되었다. 이렇게 만든 것은 그녀다. 거기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같은 순간이 돌아오거든 같은 선택을 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그를 살리기 위해.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정말?정말 그와 함께할 수 있을까? 부러 든 생각을 잘라냈다. 어쩌면 일찌감치 예감한 가정을, 가설을 지웠다. 그녀는 그와 달랐다. 오지 않은 가정을 말하며 대비하라거나, 싫었다. 그런 가정을 할 바에야 일분일초라..

with.루 2018.11.21

목욕 후

: 루 모겐스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투명한 창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기온이 분명히 달라졌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창문에 손을 짚으면 그 온도차가 더욱 선명해졌다. 따스한 안과 서늘한 밖. 안쪽이 제 영역이 될 줄은 예전이었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 그러나 지금은 제법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따스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나오면 훈훈한 공기가 감도는 집, 신선한 우유 한 잔에 취향껏 설탕도 꿀도 코코아 가루도 타 마실 수 있다. 얼마 전 산 살짝 씁쓸한 맛의 코코아를 데운 우유에 녹여 휘 휘 젓던 에슬리는 곧이어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잠든 연인을 발견하였다.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수건과 아직 물기가 조금 남은 잿빛의 머리카락. 젖은 탓인지 평소보다 조금 더 짙은 색..

with.루 2018.11.06

할로윈 명작 동화

: 루 모겐스 옛날 옛날 어느 먼 옛날, 실은 그렇게 멀지도 않을지 모르는 옛날, 먼 것은 시간이 아니라 거리일지도 모르는 어느 먼 곳에 빨강망토가 살고 있었어요.빨강망토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사냥꾼이었답니다. 그녀가 늘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붉은색의 망토가 실은 사냥감들의 피로 물든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요.빨강망토는 소문에 대해 맞다 아니다 한 마디도 답한 적이 없어요. 어쩌면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다 무섭게 보이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던지도 모르죠. 마을에선 빨강망토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빨강망토가 사는 마을의 바로 옆에는 커다란 숲이 있었어요. 빨강망토가 늘 사냥을 하러 들어가는 그녀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곳이죠. 마을보다 훨씬 좋아하는 곳이기도 해요.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숲에..

with.루 2018.10.31

더없이, 더 많이

: 루 모겐스 *소란이 들린다. 떠들썩한 목소리들이 뒤섞여 무어라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 한 데 뭉쳐 덩어리진 목소리들을 따로 떼어 들을 수 있었다. 귓가에 손을 올리고 섬세하게 소리들을 분류하여 담아낸다. 그러면 하나, 하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듯 선명하게 귀에 담겼다.아빠, 안아줘. 엄마 저거 사줘. 어린아이의 떼를 쓰는 목소리와 그래 그래, 어르고 받아주는 어른의 목소리. 잘 휘저어 녹인 사탕 같아. 그리고 단단하게 굳겠지.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다리 아프지 않아? 손잡고 걷자. 다정하게 사랑을 속닥거리는 연인의 목소리, 이건 꼭 솜사탕 같고. 폭신폭신 가볍고 사르르 녹을 것만 같아. 친구들이 왁자지껄한 목소리도 들렸다. 이번엔 저거 구경해. 내가 이기면 이따 네가 한 ..

with.루 2018.10.07

300일째의 데이트

: 루 모겐스 8월 2일의 탄생화는 수레국화라고 해요:)이미지는 프리픽! 변함없이 이른 아침의 이슬을 맞이하러 가는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막 돌아가던 길에 에슬리의 눈을 사로잡은 건 비죽비죽하게 솜털이 난 채 길게 목을 뻗은 파란 꽃들이었다. 오늘은 얘네를 가져갈까.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마도 300이었던 것 같다. 날짜를 헤아리던 에슬리는 괜시리 혼자 멋쩍은 기분이 되어 목가를 문지르며 꽃을 꺾었다.이제 해가 뜨기 전에 나갔다 오긴 무리였다. 한 번 가볍게 걷고 오면 그것만으로 더운 기분이 되어 한 번 물을 끼얹고 그의 옆자리로 돌아갔다. 찬물을 뒤집어 쓴 덕에 식은 피부가 가까워지자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가 팔을 뻗어온다. 시원한 게 기분 좋았던 걸까. 폭 안겨 익숙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with.루 2018.08.03

다이어리

: 루 모겐스 「이거, 같이 적어보지 않을래?」그렇게 말하며 루가 가져온 건 다이어리였다. 매일매일 질문이 하나씩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쓰는 다이어리. 페이지를 한 장 넘기면 새로운 질문이 있어서 두 사람이 각자 질문에 대한 답을 적으면 된다고 했다.헤에, 재밌겠다.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글씨 서툴러도 놀리면 안 돼. 그녀의 말에 루는 물론이야. 하고 웃어주었다.질문 하나에 답은 두 개. 그 밑으로 조금 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보기도 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다이어리에 적힌 그의 말을 보는 건 신선하고 새삼스러워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이어리를 놓아둔 탁자 앞을 서성이며 왔다 갔다 해버렸다.다이어리를 넘기고 있으면 오래 전 주고받았던 편지를 떠올리게 했다. 아니면 교환 일기..

with.루 2018.07.09

지구 반대편에서

: 루 모겐스 하아───. 입김을 내뱉자 창가에 하얀 김이 서렸다. 그 위로 뽀득뽀득 낙서를 한다. 하트를 그렸다가 그의 이름을 적었다가 아, 뒤에서 그가 오는 기색에 후다닥 소매 끝으로 지워버렸다. 다시 깨끗해진 창 너머로는 까만 하늘로부터 송이송이 떨어지는 함박눈이 있었다.언제나 겨울인 이 지역은 눈구름이 없어도 눈을 쏟아내는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별빛과 눈이 한 풍경에 담겨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후, 숨을 내쉬자 다시 창에 김이 서린다. 이번에는 창에 웃는 얼굴을 그려 넣자 그녀의 뒤에 앉은 그가 팔을 뻗어 껴안아왔다.“오늘 중으로 마차가 오는 건 무리래.”“역시? 그럼 이제 어쩌지. 꼼짝없이 여기서 해 뜰 때까지 있어야 하나.”“저쪽에서 임시 숙소를 제공해준다던데.”어떻게 할래? 물어보면..

with.루 2018.07.05

여름의 시작

: 루 모겐스 “다녀왔어.”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현관이 철컥 열린다. 다녀왔어, 루? 벌떡 일어나 현관까지 마중 나가려던 에슬리는 막 신발을 벗는 그를 보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아, …어때?”살짝 쑥스러운 빛을 하며 그가 허전한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손바닥에는 흰 목선만 닿았다. 평소라면 목가에서 느슨하게 묶어 어깨 아래로 닿았을 옅은 회색의 머리카락이 지금은 귀를 살짝 덮을 정도만 남아있는 것이다.어쩐지 오늘은 어딜 가는지도 말해주지 않고 “금방 다녀올게.” 그렇게 훌쩍 나갔다고 생각했다. 어떠냐고 묻는 그를 앞에 둔 채 에슬리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그러다 한 박자 늦게 후다닥 소파 뒤로 숨었다. 이상해? 반응이 신경 쓰였는지 그가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에슬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with.루 2018.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