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주노 43

33) 500 챌린지

For.주노 어제가 무려 주셸 500일!!! 더보기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요?] 아침부터 도착한 연인의 메시지에 주노는 잠깐 심호흡을 했다. 듣자하니 여기에 답하지 못해서 싸우는 커플의 수가 저 살비 앞바다의 모래알만큼 많다던가. 물론 그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었다. 22일, 100일, 200일, 300일, 1주년을 거쳐…… 벌써 오늘로 500일. 그러니까 즉 사귄 지 500일 되는 기념이라는 특별한 날인 것이다. 지금도 기록을 할 때 스마트 로토무보다 노트와 펜을 선호하는 주노는 일정 같은 것도 스케줄러에 수기로 작성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디데이 어플 같은 것도 써본 적이 없고 오늘이 사귄 지 며칠째 되는 날인지도 생각나서 확인해볼 때가 아니면 기민하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면 스마트 로..

with.주노 2023.08.10

32) 언해피데이

for. 올리버 더보기 언해피데이 숨이 막힐 정도의 갑갑함, 코를 찌르는 시원한 스킨 냄새, 품을 감싼 체온은 에어컨 바람을 가로막으며 온기를 안겨준다. 글쎄,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비몽사몽인 채로도 비현실적임을 감지해낼 만한 비상사태였다. 에스프레소를 원샷한 기분으로 정신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온몸의 핏기가 사악 빠졌다. 매니저가 보았다면 감동의 눈물을 흘릴만한 기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녀가 눈을 뜬 자리는 무려 (어쨌든) 남자친구의 품 안인 것이다. (일단은) 남자친구 품에서 눈을 뜨는 게 뭐 어때서? 그야 뭐가 어떻다. 태어난지 40개월을 지난 이래로 단 한 번도 남들 다하는 ‘평범함’을 보내본 적 없던 여자는 이게 차라리 버라이어티 촬영 중이길 바랐다. 어떻게 이럴 수 있..

with.주노 2023.08.03

31) 밀밭에 부는 바람

for. 주노 더보기 [1] 낯선 곳에 떨어진 아가씨가 제일 먼저 알아차린 건 젖은 흙냄새였다. 정원의, 바짝 마른 토양 위로 정원사가 표면을 적실 만큼 끼얹은 물이 증발하는 냄새가 아니라 긴 시간 꽁꽁 얼었던 겨우내 흙을 괭이로 전부 갈아엎어 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뒤집혀 섞인 오래되고 눅눅한 젖은 흙냄새. 땅속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작은 생명체들과 양분들이 봄 밤, 달빛 아래서 몸을 말리며 나는 낯선 냄새다. 당장에 의존할 게 오감 중 후각이었다. 주변은 흐리멍덩하게 실루엣만 알아볼 정도로 캄캄했고 귀를 기울여봤자 바람에 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짐승 울음소리나 들려 공포를 부추기기만 할 뿐이었으니. 이렇게 캄캄한 밤은 아가씨에겐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도 그랬다.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개발하고 전..

with.주노 2023.08.03

30) 소년소녀표류기

여름청춘 아포칼립스 합작을 하고 왔어요~^^)0 합작 링크 더보기 소년소녀표류기 :prologue [지금부터 하계방학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겠습니다. 각자 국기를 바라보고 서서……] 주파수를 맞춘 라디오에서는 한창 방학식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소녀는 두 사람밖에 없는 텅 빈 교실에서 멍하니 칠판 위, 국기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례를 하는구나. 형식미라는 걸까. 그러나 뭐, 나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 심장 위에 손을 올린다. 의례적인 동작이었을 뿐인데 두근두근, 아직까지도 뛰고 있는 이 고동이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두근두근, 앞으로 더 살아가야 함을 알렸다. 두근두근, 고동은 손바닥 아래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with.주노 2023.07.28

28) 낭만과 불안의 궤도

더보기 낭만과 불안의 궤도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의 오마주가 있습니다.) 광활한 세계, 시작과 끝의 구분이 의미 없는 무한대의 공간. 모든 색이 형형색색 빛나는 나머지 어떤 색도 빛을 알아볼 수 없게 된 새까만 암흑공간의 4차원, 우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하며 인지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광의의 세상.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미지의 세계에서 낭만을 찾는지도 몰랐다.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린 속도로 공전을 하는 행성의 바깥으로 귀여운 리본이 달린 1인 우주선이 순찰을 돌았다. 새까만 우주에 장식하기엔 지나치게 깜찍한 것이었으나 우주는 너무나 휑했고 1인 우주선 하나쯤은 우주의 티끌밖에 되지 않아 문제는 없었다. 장해물은 없는지, 다른 신호는 보이지 않는지 확인하면서 우주선의 조..

with.주노 2023.04.29

26) 365번째 사랑 고백

For. 주노 더보기 Dear. 하루를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당신에게. 어느새 남쪽에서부터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고 해요. 분홍빛 파도가 둔치를 덮을 날도 머지않았겠죠. 시간이 유수와 같다고 하지만 이렇게 속도를 실감한 적이 없었는데 굉장히 신기한 거 있요. 벌써 1년이라니요. 하루하루를 헤아리면 굉장히 느리게,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흘러간 기분인데 모아놓고 보면 도미노처럼 와르르, 쏜살같아서. 당신과 연인으로써 보낸 시간이 어느덧 1년이나 지났다는 게 아까워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에요. 이제껏 어떤 걸 아깝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당신과의 시간은 금보다도 다이아몬드보다도 값진 것이어서, 저번에 선물해준 유리병의 사탕이 줄어들 때마다 아까워하듯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아쉽게 여겨요. 저 멀리 ..

with.주노 2023.04.13

25) 샌드위치 대작전

For. 주노 더보기 타고나길 식사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에셸 달링은. 한 그릇만 더 밥을 먹었으면 키가 더 컸을 거라는 아버지의 애정 어린 농담과 여자애가 커서 무얼 하냐. 지금이 가장 어여쁘다 말하는 할머니 사이에서 어머니는 냉정하게도 “적게 먹을 거라면 맛있는 것만 골라 먹으렴.” 아니지, 가장 실용적인 조언을 남기셨다. 그 말을 따라서 에셸은 특별히 편식하지 않는 입맛이지만 이왕이면 무엇이든 맛있는 걸 먹으려고 고심했고 대단히 미식가라고 할 순 없지만 라이지방에서 맛집 지도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당장에라도 10곳은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놓고 본인의 요리는 어째서 그렇게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냐고 묻는다면…… 그야, “다양한 맛을 알기 위해서!”라고 해둘까? 뭐든 도전하고 실패해야 데이터가..

with.주노 2023.04.13

24) 신데렐라 이야기

오프더레코드 이야기 이삿짐님의 사인 커미션 잘 어울리고요. 더보기 “신디. 브랜드 모델 제의가 들어왔는데~” “뭔데?” “이거 한번 봐봐. 캐치 프레이즈는 「마녀가 되고 싶은 너에게」. 선명한 색깔을 강점으로 내세울 틴트 브랜드래.” 너랑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걸. 매니저의 안목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그러게 드라마는 미루자고 할 때 그 말도 들을걸─. 건네진 자료를 몇 장 넘겨본 것만으로 신디는 이 브랜드에 누구보다 잘 어울릴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과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미지가 그녀가 새로 만들어야 할 이미지와 잘 맞는단 것도 알아차렸다. 그래, 슬슬 이미지 쇄신을 해야 할 때지. 괜찮네. 해볼게. 신디의 승낙에 매니저는 바로 반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대.” “조건?” “브랜드 P..

with.주노 2023.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