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주노 43

13) 입맞춤을 참지 마세요

For.주노 더보기 문득 고개를 갸우뚱, 저도 모르게 기울인 것은 저녁 준비를 하는 주노의 옆에서 그릇을 옮기다가 주노가 이쪽을 돌아보는 순간 버릇처럼 쪽, 뽀뽀를 했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였다. 마침 가까이 있어서 닿을 것 같아서 하고 싶어서, 스치듯 톡 닿았다 떨어져서는 마저 그릇을 옮겼다. 식기를 두고 수저를 놓고 테이블보를 가지런히 하고 음식을 옮긴다. 그러다가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잦지 않나? 자신이 이렇게 뽀뽀하고 지나갈 때마다 주노의 표정이 어땠는지, 귀끝은 어땠는지 잠시 잊어버리고 든 걱정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것에 갑자기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괜한 걱정이 솟고 할 때가. 그래서──…… 너무 자주 하고 있진 않나? 왜,..

with.주노 2022.08.13

12) 어느 날 TV에서

For. 주노 더보기 어느 날 TV에서, ‘그 인터뷰’가 나왔다. 『지금 애인과 처음 이상형의 차이점이 있다면?』 지나가는 커플을 불러 세워서는 질문을 던져보자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왔다. 누구는 지금 애인과 이상형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답해서 바로 카메라 앞에서 애인과 투닥거리기도 하고─그렇게 말한 것치고 두 사람은 굉장히 사이가 좋아 보였다─, 누구는 수줍게 이상형 그대로라고 답하기도 하고, 누구는 이상형은 중요하지 않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답하고……,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세간의 모든 커플들이란 결국 이상형은 중요하지 않고 좋아하게 된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증명하는 것인지 굉장히 좋은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여기 한 연인이 소파에 나란..

with.주노 2022.07.18

11) 7월을 시작하는 어느 멋진 날에

For.주노 더보기 7월을 시작하는 어느 멋진 날에, 새삼스럽게 펜을 들려니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간질간질하네요. 캠프에서 쓴 다이어리를 당신에게 보인 적도 있고 지금도 공동 다이어리 같은 것을 쓰는 셈이라고 하는데 특별한 날의 손편지는 각별할 수밖에 없나 봐요.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건요. 저희 연애한 지 벌써 곧 100일이라고 해서요. (어머, 세상에!) 아직도 ‘연애’’라고 하면 막연하고 낯선 기분인데 상대가 주노 씨라고 하면 뭐든 괜찮고 좋기만 해요. 얼마 전에 그런 질문을 받았잖아요.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하던. 그때 제일 먼저 주노 씨가 생각이 났어요. (사실 요즘 사소한 여러 가지 것에서 당신을 떠올리곤 하지만요.) 주노 씨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강해..

with.주노 2022.07.18

10) Strawberry Moon

For.주노 더보기 ─1년에 딱 한 번, 6월에 뜨는 보름달은 평소보다 붉어서 ‘스트로베리 문’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14일 밤, 우주 및 천문학 관련 매체 Space에서는 분홍빛 보름달이 떠오를 것을 관측하며…… ─6월 14일은 키스데이라고 하죠. 연인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뜻에서 키스를 나누는 날로 이렇듯 매달 14일은 특별한 기념일로 꾸며져 있는데요……. 정신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이 한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했다. ‘오늘이야, 오늘. 아주 특별한 날. 로맨틱한 날.’ 새와 개구리와 토끼와 물고기가 입을 모아 노래하는 동화 속 세계관이었다면 에셸이 집을 나온 그 순간부터 연인을 만날 때까지 모든 만물이 이 리본머리 아가씨를 주인공 삼아 속삭이지 않았을까. ‘키스해, 에셸. 오늘을 놓쳐선 안..

with.주노 2022.06.14

09) 낭만이란?

For. 주노 더보기 화기애애한 담화 소리, 잔을 부딪치거나 나이프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고소하고 따뜻한 음식 냄새, 마지막에는 함박웃음이 나올 만큼 공들인 디저트까지. 오랜만의 가족 저녁식사였다. 한 가지, 언제나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의자가 하나 늘어 있던 것. 하나뿐인 외동딸의 애인이 함께하는 식사자리였다. 두 사람이 사귄지도 어언 두 달. 어찌나 애지중지 알콩달콩하게 지내던지 누림에서 둔치까지, 라이지방 전역을 돌아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고 과장할 수 있었다─적어도 누림과 둔치에서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어쩌다 보니 라이지방의 첫 마을과 끝 마을이 다 알고 있으니 전역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지도─. 양가 어른들께서도 일찍이 알고 계셨으나 에셸이 독립하기 전에 집을 오가면서 인사를 드린 적이 몇 ..

with.주노 2022.06.03

08) 전부를 당신에게

For.주노 더보기 똑딱똑딱. 머릿속의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동안 신중하게 스톱워치를 응시하던 에셸은 드디어 디지털시계가 참 멋없다던 할머니의 말을 이해했다. 빠르게 휙휙 올라가는 숫자를 따라가는 건 굉장히 마음이 쫓기는 일이었다. 눈보다 소리로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래도 중요한 타이밍이니까요. 두근거림과 설렘을 안은 채 시계가 정확히 0시 0분에 도달하자마자 초인종을 누른다. 딩-동. 경쾌한 소리가 마음의 문까지도 노크하는 듯했다. [……그래서 내일은, 어라? 이, 이런 시간에 누구지……?] “후후후. 누굴까요~?” [엣? 그, 자, 잠시만──] 휴대폰 너머로 우당탕하는 소리가 이어지고 현관이 열릴 때까지 위키링과 바나링을 양옆에 대동한 채 에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얼굴이 얼마나 장난스러..

with.주노 2022.05.21

07) 레몬, 후르츠 롤케이크, 팝핑캔디

For.주노 더보기 ─첫키스는 어떤 느낌일까요? 소설에서는 레몬 맛이 난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어째서 레몬 맛일까요. 딸기 맛이나 복숭아 맛은, 사람의 입술은 과일 맛이 나는 걸까요? 언젠가 친구는 첫 키스에서 레몬 맛 같은 건 나지 않는다고 투덜댔어요. 환상이 깨졌다고. 그러더니 다음날에는 레몬사탕을 입에 물고 키스했다고…… 어머나. 드라마나 영화 속의 키스장면은 어땠더라. 그다지 유심히 본 적이 없어서 막상 떠올리려니 뭉뚱그린 화질의 풍경만 스쳐갔어요. 대개 영화 속 장면들은 아름답게 연출되곤 하잖아요. 얼굴이 포개지면서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고 두근두근한 음악이 흘러가고 그 한폭의 컷이 예뻐서, 막연하게 첫키스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인식했어요. 언젠가 저도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날이 올 거라고 아..

with.주노 2022.05.11

05) In the box Sequence

For.주노 더보기 S#1.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이 표현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있다가 세상이 어두워진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가 어두운 곳에 갇히게 되었다는 말이 맞을까. 포인트는 ‘갑자기’보다도 ‘우리’에 있었다. -에, 에셸 씨. 괜찮…으세요? -ㄴ, 네. 저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 글쎄요. 저도 잘……. 좁은 공간에 연인이 함께 갇혔다. 옷감이 스치는 바스락거림, 지척에서 느껴지는 숨결,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 모든 소리가 생경하면서 생생했다. 뜨겁게 닿는 체온, ──그보다 체온이라면 지금 어디가 닿은 거지? 의식과 동시에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 -자, 자자, 잠깐, 우,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우뚝. 다급한 목소리를 따라 스위치..

with.주노 2022.05.03

04) 지난번에 구해주신 토끼가 사실 당신을 사랑이라는 함정에 빠트리는 무시무시한 마녀였습니다.

For.주노 더보기 기억하고 있나요? 왜, 지난번에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당신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별 거 아닌 일이어서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사냥꾼의 덫에 걸린 토끼를 놓아준 일이요. 사냥꾼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맘대로 덫을 풀어줘도 되는 걸까. 얼굴에 오만 고민을 담고서도 당신은 그 분홍색 토끼의 애처로운 시선을 외면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쇳덩이의 입을 벌려 토끼를 구해주었죠. 토끼는 그런 당신에게 꼭 은혜를 갚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만약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보통의 동화와는 다른 이야기죠? 왜냐하면 토끼는 사실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마녀였고, 마녀는 선량하고 다정한 인간 청년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거든요. 은혜를 갚는다고 해놓고 그의 주위를 빙빙 맴돌던 마녀는 생각했죠. ..

with.주노 2022.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