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98

47) 02.1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더보기 7주차 리포트 목새마을에 도착한 날의 새벽, 그 날도 잠들지 않고 버티려던 에셸은 그만 몰려오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기차에 타야 한다는 부담을 넘어선 덕분일까. 그 날은 정말 오랜만에 깊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포근한 이불에 감싸여 저보다 작은 아이와 한 온기를 나누며 에셸은 생각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가 좋아하는 책에서 나오는 구절이기도 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당장 내일에 들이닥칠 운명조차 모르면서 사람은 때론 어리석고 때론 탐욕스럽고 때론 비겁하고 때론 정의롭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언제나 늘 사랑이다. 사람을 내일로 데려가는 힘이었다. 에셸은 제가 받은 사랑만큼 이 품 안의 아이가 사랑으로써 살아가길 ..

46) 02.14. 동갑 친구

For.심랑 더보기 캠프에서 만난 동갑의 친구는 이제까지 에셸이 만나온 또래 친구와 많이 다른 편이었다. 라이지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호연의 전통복.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닮은 새하얀 머리카락을 하고 몸에선 늘 온기가 느껴졌다. 단순히 체온이 높은 것과는 조금 다른, 마치 돌을 달군 것과 같은 따뜻한 열기는 그가 용암마을 출신이란 걸 알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온천의 열기였을까. 이름은 심랑. 마침 눈높이도 저와 비슷하다. 귀여운 이름에 처음엔 랑랑이라고 부를까 고민하다가 처음부터 지나치게 살갑게 구는 건 아닐까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옆에서 랑랑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내심 부러워하는 중이다. 참, 이건 비밀이었는데.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움직일 때면 폭이 넓은 하카..

45) 02.13. 집

For.루미 더보기 불안함이 여실히 남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주저하는 동안 끈기 있게 기다리고 아이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랐다. 그가 먼저 아이를 안아서야 소용없었다. 그저 품에 안아준다는 행동 하나로 아이가 가진 슬픔이나 불안을 덮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선 의미가 없다. 여자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들을 덮어버리기보다 상자를 열어 토해내길 바랐다. 품 안에 퍽 자리가 남았다. 아이는 또래보다도 작고 물러 이러다 밀랍으로 만든 인형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처음 캠프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그랬다. 새하얗고, 그 새하얀 몸이 혹시나 눈에 띄지 않을까봐 알록달록한 색채를 휘감은 작은 아이였다. 겉보기도 무게도 한없이 가벼워 아이가 늘 안고 다니는 인형처럼 아이 본인도 사실은 솜으로 채워져 있지..

44) 02.12. 심야의 메이드

더보기 다라마을 의뢰 배틀 카페의… 메이드!? 열차에서 벌어진 소동의 뒷수습에 트레이너 캠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배틀 카페의 일손 부족을 돕기 위해 대타를 뛰는 일이었다. 단순한 카페 아르바이트라면 누림마을에서도 해본 일이다. 어려울 것 없어 보였지만, 이번 아르바이트는 몇 가지 수행할 사항들이 있었다. 하나는 이곳이 배틀 카페이다 보니 배틀을 신청하는 트레이너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카페 유니폼이 바로 메이드복이란 점이다. “우리 딸아이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유니폼이 부끄러운지 단칼에 거절하지 뭔가! 핫하하!” 딸에게 메이드복을 입히려는 아버지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메이드복에 불타오르는 캠프도 대단하다 해야 할까. 전에 없이 의뢰에..

43) 02.12. 답은 당신에게

For. 안드레이 더보기 세 번째 체육관까지 그의 도전을 지켜보았다. 안드레이는 갓 새 출발을 한 청년만 같았다. 누림에서 북새로, 북새에서 혜성으로. 마치 태엽을 거꾸로 돌리는 것만 같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애도에 차 있던 남자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열어준 길을 따라서 점점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늘에서 벗어나 음울한 표정을 지우고 뜨겁게, 또 열정적으로, 강렬하게, 때론 아이처럼. 캠프의 모두가 그를 환영할 것이 틀림없었다. 이곳은 누구나가 꿈을 찾아 모인 자리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새로운 길을 찾기 이전의 그를 알던 사람들은 어떨까. 이미 지나온 길에 남겨진 사람들이라면. 비극인 것 마냥 느낄까. 그를 잃었다고 생각할까. 두 길은 양립할 수 없는 걸까.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42) 02.12. 우리 모두 휴식이 필요해!!

더보기 다라마을 의뢰, 메이든은 휴식이 필요해 캠프의 최장신인 천궁을 볼 때도 에셸은 한참 올려다보곤 했다. 천궁은 태산을 닮은 이미지였다. 나무로 된 산보다는 돌로 된, 잘못 올라가면 바위투성이로 바람에 깎이고 부서진 흔적이 보이지만 그곳을 잘 넘어가면 산은 수많은 자연의 포켓몬들의 터전이다. 천궁에게선 그런 호흡이 느껴지곤 했다. 아주 오래 산. 그래서 때때로 그가 아직 이립(而立)도 되지 않은 청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대단히 실례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스팀은 그런 천궁과 눈높이가 엇비슷했다. 천궁보다 훨씬 크고 우람한 체구는 그를 한층 위압감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냥 무서운 인상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가 각진 턱과 두꺼운 눈매를 하고도 늘상 서글서글 웃는 낯인 덕이겠지.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41) 02.12. 곡예하는 출근길

더보기 혜성시티 의뢰! 인어의 경호원 이것은 에셸이 혜성시티를 떠나기 전의 이야기이다. 수상한 사람들이 혜성시티 근방을 어슬렁거린다는 보고 이후로 로렐의 경호인력은 배로 늘어 있었다. 하지만 인력을 늘리고 싶다면 우선 일할 사람이 있어야지. 「그래서, 에셸이라면 무려 폴카 배지가 있는 트레이너잖아. 와주면 안 돼? 경호보다는 나랑 이야기 해주는 게 메인이지만~」 무려 로렐의 스카우트다. 거절할 리가 없었다. 저녁이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짐을 싸두고 에셸은 아침 일찍부터 예술극장을 찾았다. 에셸, 여기야~ 손을 흔드는 로렐의 곁으로 가자 경호팀장이 곁에 함께 서 있었다. “달링 씨에게 부탁드릴 구역은……” 로렐은 자신과 이야기 해주는 게 메인이라고 했지만 경호팀장의 표정은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았다...

40) 02.09. 속수무책

For. 비비안느 마르티나 더보기 그의 손이 눈을 덮는 순간 다시금 세상이 캄캄해졌다. 손바닥 아래의 암흑에 안겨 에셸은 문득 제가 한 번도 어둠을 무서워해본 적 없음을 떠올렸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어둠에 공포를 느끼기 쉽다고 한다. 어둠 너머의 미지, 고요, 아이들의 사고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탓일까. 그러나 에셸에게 어둠은 무서울 것이 없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솔라리스와도 나누었던 대화이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아침이 올 줄 알았기에. 어둠속에서 한 번도 혼자 있지 않았기에. 그것이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어둠은 이 다음 단계를 향한 안식처였다. 반면 섬광은 불시에 그를 놀라게 했으며 또 아프게 했다.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손해를 입혔다. 때문에 시작과 끝을 잡을 수 있는 어둠이 불시..

39) 02.07. 긴 밤 악몽

더보기 6주차 리포트 쉴 새 없이 울리던 워치가 비비안느 덕분에 잠잠해진 사이 에셸은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의 그는 어린아이였고 굉음과 섬광을 따라 정처 없이 흔들리고 휘말렸다. 지면은 안전하지 않았고 한쪽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계속해 불었다. 열풍이 아이의 몸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 이럴 거면 차라리 흔들풍손의 손을 잡는 게 나았다. 아니면 그가 흔들풍손이 되어버리거나. 악몽이었다. 그러나 악몽이라고 느낄 만큼 고통스럽진 않았다. 어디선가 분홍색 눈동자가 계속해 지켜봐준 덕일까. 그 눈동자는 때로는 소용돌이치는 몽나의 눈동자였고 때로는 흰 별이 반짝이는 벗의 눈동자였다. 그 사이 몽나가 트레이너의 꿈을 빨아들였다. 몽나의 이마가 하염없이 뜨거워져만 갔다. 그럼에도 쉴 틈이 없었다. 빨아들여도 빨아들여도..

38) 02.06. 눈꽃호수 데이트

For.주노 더보기 혜성시티에 올 때마다 에셸이 방문하는 곳은 몇 군데 있었다. 그러니까, 업무상의 방문이 아니라 사적으로. 그 중 오늘 선택한 곳은 베이커리 겸 카페로 운영되는 곳이다. 주노의 팔을 가볍게 잡고는 가게에 들어서자 경쾌한 차임과 함께 에셸을 알아본 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와, 에셸 씨. 오랜만이에요.” “요즘 왜 안 오셨어요. 달에 한 번씩은 꼭 들러주시더니.” “옆엔 친구 분?” “네~ 누림마을의 주노 씨라고 해요.” 진한 버터 향과 빵 굽는 냄새가 진득하게 밴 곳이었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직원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퍽 익숙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제 옆의 동행인이 생각났다. 사람이 많은 곳은 조금 꺼리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주목 받는 것도 어려워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