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98

37) 02.05. 산책 맡길 상대는 잘 보고 고르자

더보기 혜성시티 의뢰 하루 종일 스파를 즐기고, 주린 배를 채우러 에셸은 포켓몬들과 함께 시내로 나섰다. 멋진 런치를 하고 후식으로 크레페를 사들고─총 6개의─입에 물며 귀가하려던 그를 불러 세운 건 어딘지 엘레강트한 목소리의 사내였다. “거기, 너!” “네?” 이 도련님은 혹시 ‘소문의 그 도련님’인가? 루미 씨나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하고, 그 때문에 혼나기도 하고. 결국은 제리 씨를 보고 울면서 도망쳤다던. 소문의 도련님이지만 정작 에셸은 처음 마주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에셸이 승낙하기도 전에 트리미앙의 리드줄을 넘겼다. 트리미앙은 교육을 잘 받았는지 줄이 넘어가는 동안에도 온순하게 있었다. 파피루스를 닮았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전혀 다른걸요? 훨씬 얌전하고 유순하네요. 남자는 ..

36) 02.04. 혜성체육관 출연

더보기 체육관 도전::혜성 몬스터볼이 담긴 가방을 손에 들고 호텔을 나와 체육관으로 향한다. 가는 길은 제법 낯설었다. 극장에 별관이 있고 거기가 체육관인 것까지도 얼추 알고 있었지만 그곳을 방문하는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하물며 관객도 아니고 챌린저로서 도전이다. 벌써 세 번째 체육관이었지만 에셸은 묘한 긴장과 고양을 어쩔 줄 모르고 느꼈다. 오늘의 엔트리는 그가 보일 수 있는 전부였다. 위키링, 저글링, 냐미링, 후와링, 바나링. 상대는 셋이고 이쪽은 다섯이라니 숫자만 봐선 도전하는 쪽이 치사하기 짝이 없는데 마음가짐은 제가 불리해도 한참 불리했다. 하지만 언제는 이길 승산을 안고 겨루었을까. 어깨의 힘을 푼 에셸은 대기실에 도착해 포켓몬들을 꺼내고선 다 같이 웃는 시간을 가졌다. ..

35) 02.03. 바람에 떠밀려 내려오는 기구

더보기 친밀도 로그::후와링 후와링의 몸이 하늘에서 환하게 빛났다. 자신의 포켓몬으로서는 처음 보는 진화의 빛이었다. 아찔한 빛을 어떻게 눈치 챘는지 바나링이 자신의 천으로 트레이너의 눈을 가려주었다. 어둠대신의 뿔은 인간의 기분을 감지한다 했던가? 덕분에 에셸은 포켓몬의 진화를 앞두고 기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바나링.” 목이 메듯 힘겨운 목소리로 답을 하고 어둠대신을 두 손 위에 올렸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치고는 아이는 사실, 그다지 작지 않았다. 어느 정도냐면 위키링보다도 클 정도. 에셸의 생각을 읽은 듯 위키링이 훅, 바나링의 아래에 촛불의 열기를 비치는 시늉을 한다. 공기열에 바나링의 천이 펄럭였다. 잠깐, 얘들아. 장난치지 말고요. 불켜미를 옆구리에 끼우고 에셸은 진화해..

34) 02.03. 곡예하는 풍선

더보기 진화로그:: 후와링 (흔들풍손->둥실라이드) 체육관전을 앞두고 에셸은 옥상정원에 올라 바람을 쐬고 있었다. 잠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전략을 짜다가 쉬는 시간이라니, 제법 트레이너다운가? 배지를 2개 다는 동안에도 여즉 실감이 나지 않는 그것이다. 그래도, 포켓몬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많으나 수읽기는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상대의 강점과 제가 가진 것을 비교하고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예측한다. 상대가 최선으로 선택할 것, 그 안에서 자신이 보일 수 있는 것. 주로 거래처와 협상할 때 하는 일이었으나─심지어 그 때는 누구 한쪽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win-win이 될 수 있도록 하였는데─체육관에서 보이는 전략이란 함께 이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전제였으며, 그보다는 까딱 하나가 ..

33) 02.03. 시간이 덮어준 것

For. 제롬 / 과거로그 더보기 5주차 리포트 “제가 알려주려고 한 건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지금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는 제 행복에 관한 말이었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두 검지를 세우고 히-, 제 양 입꼬리를 당기는 시늉을 하였다. 이것 봐요. 이렇게 웃는 거요. “제리 씨가 한 번 웃어준다면 저는 그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처음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뻔뻔하게 말하려고 했다. 이래봬도 제법 철면피인 여자였다. 그랬는데, 박자가 어긋나버리는 통에 어쩐지 부끄러워져 슬 양손을 내렸다. 누가 봐도 남의 옷인 품이 남는 겉옷을 당기며 민망한 낯을 감춘다. 열이 오른다면 필시 이 때문이리라. 그 다음으로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고 장소야 어디든 좋았으나, 아마도 짧지 않은 이..

32) 02.02. 태동을 느끼고 반응해봅시다. ---부화 스텝⑦

더보기 알의 태동은 어느새 바깥에서도 선명히 들릴 정도였다. 두근두근하고 약동하는 표면 아래로 알이 느끼는 감정이 생생히 전해졌다. 기대와 기쁨, 설렘. 나는 이미 충분히 기다렸어. 너는 날 맞이할 준비가 되었어? 알에게서 느껴지는 메시지에 에셸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그 따뜻한 곳에 이마를 붙였다. “그럼요. 준비가 되었고말고요. 만나러 와주세요, 러블링. 모두가 당신을 기다려요.” 후와링도, 냐미링도, 저글링도, 위키링까지도. 모두가 알의 탄생만을 기다렸다. 알이 깰 준비를 마치고도 잠시 부화를 미룬 건 위키링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파트너와 냉전 상태인 채로 그야 새 가족을 맞이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에셸은 사실 불켜미가 그간 저를 많이 참아주었던 걸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31) 02.02. 목욕 중 우유 한 잔

더보기 친밀도 로그::저글링 아직 스파를 나가기 전. 에셸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새로 찾아간 곳은 우유빛으로 물든 탕. 고소하게 피어오르는 우유색 수증기와 액체가 피부를 맨들맨들하게 해줄 것만 같았다. 곁에는 저글링이 함께였다. 스파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다른 포켓몬들과 달리 저글링은 진심으로 스파를 만끽하고 있었다. 밀탱크가 헤엄을 칠 때마다 우유빛 물속에서 까만 발굽과 분홍색 다리가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탕이 맘에 드나요, 저글링?” 대답 대신 치료방울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맑은 음은 포켓몬은 물론이고 에셸의 피로와 감기 기운까지 싹 날려줄 것만 같았다. 탕 안으로 침몰할 것만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에셸은 포켓몬을 불러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밀탱크의 몸은..

30) 02.02. 목욕 후 피로슈키 하나

With. 이리나 더보기 친밀도 로그:: 후와링 “헬륨이라면 영혼의 1/4 정도는 괜찮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 풍덩, 묵직한 무게를 따라 물보라가 인다.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온천수가 넘실넘실 타일 바깥까지 흘러넘쳤다. 아르키메데스는 어떻게 이런 기분 좋은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을까. 천장에는 수증기로 인한 물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옥, 하고 떨어지면 아래 있던 포켓몬이 난데없이 물방울을 맞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포켓몬 친화적인 호텔의 장점이다. “후아아.” “하아아.” 이리나와 에셸은 동시에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 나른한 숨을 토해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짐만 풀고 스파를 향한 보람이 있었다. 새로 산 수영복은 몸에 아주 잘 맞았고 스파에는 저희 ..

29) 02.02. 얼음낚시를 해보자!

for.서리&말라카이 더보기 “사실 정말 이렇게 당장에 낚시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낚시 의자와 낚싯대, 미끼 약간. 그리고 얼음을 깰 막대기. 자귀마을에서 얻은 장비들을 가지고 에셸은 지금 서리산맥의 어느 동굴호수 앞이었다. 서리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서 통통, 통, 푹. 적당히 얼음 한 곳에 구멍을 내자 처음에는 깨어진 얼음 위로 물이 보글보글 오르더니 금세 잠잠해졌다. 호기심에 구멍 앞에 고개를 길게 빼고 들여다보자 안은 그저 투명하고 맑았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동굴이다 보니 제법 캄캄하기까지 했는데 괜히 불을 키웠다간 천장이나 다른 곳의 야생 포켓몬을 자극할지도 모른다고 하여 조명은 최소한으로 하였다. “예? 제가 앞서간 것입니까?” “아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정말 ..

28) 02.01. 행복과 슬픔의 비례

For. 루미 더보기 누군가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의 슬픔을 책임진다는 말이 되기도 했다. 행복한 이는 정작 행복이란 단어를 알지 못한다. 오직 슬픈 이만이 행복을 찾는다. 행복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슬픔을 덜어올 줄도 알아야 했다. 지방과 지방을 오가는 커다란 배에는 때때로 행복만큼 슬픔을 싣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관에 담아 옮겼다. 운구는 에셸의 영역이 아니었으나 그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늘 저까지 씁쓸함을 삼켰다. 머나먼 타지에 와서 생에 마침표를 찍고 영혼은 하늘로 보내고 육신만 남아 고향으로 보내주고 나면 매번 생각했다. 이별이란 무엇일까. 죽음은 어느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가. 그러나 끝내는 저에게 먼 이야기였다. 유별나게 작은 아이는 언제나 두 손 가득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