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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09.25. 올가미

ㅡ린도 귀하 더보기 ──그래, 이 작은 빠모는 주인의 애증과도 같은 인연에 아무런 상관도 없었으며 오로지 그 주인 되는 자의 핑계에 어울려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라도 들으란 것처럼 신나게 떠들고 다니지 않았는가. 「캠프에 참여한 이유? 모모와 친해지려구.」 그러나 반푼도 되지 않는 허울이 통하는 건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더는 그 조그만 몸뚱이에 숨을 수도 없었다. 익숙한 흙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졌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주인이 걱정스러웠는지 빠모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으앗, 간지러. 모모 이 녀석. 마트 바닥에 누워 떼를 쓰는 어린애도 아니고 나잇값도 못 하는 여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퍽 서늘하였으나 쌀쌀맞진 않았다. 애당초, 쌀쌀맞을 거였으면 굳이 납작한 빈나두가 된 그에게 굳이..

004) 09.23. 선배의 경험담

ㅡ르나르 귀하 더보기 “으핫, 비법 소스라니.” 그의 맞은편에 아주 자리를 깔고 와 도시락통의 빈자리에 교자를 쏙쏙 더 넣어주었다. 반대로 자신의 교자 접시에는 잘 튀겨진 닭튀김을 쏙 올렸다. 그 달콤아 모양은 주먹밥은 뭘로 분홍색을 표현한 건지 궁금한걸. 가게에서는 색을 낼 때 주로 과일이나 풀을 썼다. 분홍색이면 차조기 잎이려나. 산딸기를 으깨도 좋겠지. 레시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음식이 비워지는 게 순식간이었다. 싹 비워진 접시를 옆으로 밀어둔 능란은 그 자리에서 찻물을 올렸다. 역시 불 타입이 있으면 좋겠어, 가벼운 푸념이 지나간다. “식후에는 역시 따뜻한 차인데, 르나르 씨는 차 좋아해?” 정작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미뤄둔 채였다. 퍽 베테랑 트레이너인 척 군 주제에 바로 답이 나오지..

003) 09.21. 시기적절

ㅡ리치 귀하 더보기 화랑지방은 유독 애향심 강한 가문이 많았다. 나고 자란 마을에 다시금 뿌리를 박고 자식을 낳고, 다시 그 자녀가 자라서 기둥을 세우며 몇 대를 이어져 오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풍습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화랑지방을 이뤘다. 능(能)가는 그 중 하나였다. 오랜 선조가 전에 없던 글자를 만들었고 거기에 ‘능하다’는 뜻을 부여하여, 그렇게 만들어진 표의가 누구나 알아들을 뜻으로 굳어져 가문이 이어지도록 그들은 푸실마을에서 긴 세월을 지켜왔다. 분명 몇 대인가 더 위는 봉술에 능한 가문이었지. 지금은 할머니의 어머니인지 할머니의 할머니인지 아니면 그보다 위인지, 사실은 위로 올라갈 것도 없이 할머니가 새 역사를 세운 것인지 요리에 능한 가문이 되었다. 다음에는 무엇이 자랑이 될지 ..

002) 09.18. 출사표

ㅡ개인 로그 더보기 뭔진 몰라도 멋진 말이 곁들어진 수리 박사의 오리엔테이션이 지나고 삼삼오오 화담을 나누는 친목의 장이 열렸을 때, 수다쟁이 능란도 어디에나 빠지지 않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거 꼭 학교에 다녔던 시절이 떠오르는걸. 거의 한 반 규모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오랜만에 자기소개 같은 것도 하고 있자니 다들 차림새만큼이나 다양한 출신지를 선보였다. 가라르의 엔진시티, 신오의 장막시티, 팔데아 베이크마을에 관동지방 갈색시티까지. 다들 참 멀리서도 와주었다. 그만큼 각자의 기대가 걸려 있단 뜻이렷다. 그야말로 동네 마실 나오듯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걸어온 능란과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실제로도 정말 다르다.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장거리 이동의 끝에는 는개마을부터 차도 탔겠지. 이 몸은 집합 ..

001) 09.17. 안녕, 머나먼 지루

ㅡ라한 귀하 더보기 방년 20세, 능란의 하루는 규칙적이면서도 변칙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전날 가족 여섯이 정한 방식대로 오픈 당번을 뽑았고, 대개 8할이 란의 차지가 되어 그러면 별 수 없이 늘봄까지 달렸다. 쌀을 씻고 전날 준비한 죽통을 늘어놓고 물을 채우고 식탁을 닦고…… 순식간에 8시 알람이 울리면 미리 죽통밥 2개에 불을 올린다. 하루도 빠짐없이 8시 10분에 방문하여 영양죽통밥 2개를 포장해가는 손님을 위해서다. 그를 보내고 나면 하루가 시작된 실감을 느꼈다. 이 뒤에는 거진 배달 때문에 가게에 붙어 있지 않는 정신없는 시간이다. 하루에 12번도 더 가는 가온시티와 는개마을부터 전화가 걸려 오면 죽통밥을 20개쯤 짊어지고 달려야 하는 하랑마을까지, 드물게 나린마을이라도 걸리면 농땡이..

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 능란

“4대째명가원조할머니손맛 연잎버터죽통밥 4인 시키신 분?” “맛있는 밥 한 그릇에 오고 가는 정 하나. 우리네 인생이란 거지.” 캐치 프레이즈 : 방방곡곡(坊坊曲曲) 딜리버리 걸 ▷ 도화만란(桃花萬爛) 이미지 컬러: #FF8282 외관 : 늘씬하게 쭉 뻗은 키와 곧은 팔다리, 각선미가 돋보이는 차이나드레스에 발을 부드럽게 감싸는 비단신을 신고 산이든 들이든 겅충겅충 잘만 다닌다. 박하 맛 치약을 짠 것만 같은 옥색 섞인 백발은 늘 만두 두 개를 엎어놓은 듯 동그랗게 올려 땋아두었고 언제나 반만 뜬 눈은 속눈썹 아래로 개구쟁이 같은 복숭아색 눈동자를 감추고 있다. 대체로 나른한 표정과 느긋한 말투를 탑재한 채로 어디든 불쑥 잘 나타나는 편. 오른쪽 손목의 옥팔찌에는 얼터스톤이 걸려 있다. 돌에는 잘 보면 ..

39) I WISH Romantic comedy

For. 올리버 더보기 #.01 『상대와 사랑에 빠지면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이 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싫다.』 누가 한 말이었더라. sns 중독자였던 과거답게 유명한 파랑새 거주자의 말을 인용하며 여자는 손안에 든 것을 쉼 없이 굴렸다. 1분 1초,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초조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10년 전의 여자라면 그의 말에 하트를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사랑이 밥 먹여주진 않잖아요. 사랑에 빠진 것만으로 실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는데 마치 모든 일이 원만하게 끝날 것처럼 연출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전 영 취향이 아니네요. 10년 뒤 33살, 머지않아 34살이 되는 여자로 말하자면 사랑에 빠지는 걸로 엔드롤 해버리는 영화 따위 안일하기 짝이 없다는 혹평을 할 ..

with.주노 2023.12.24

38) 언밸런스

for. 올리버 더보기 11월 30일에서 12월 1일로 넘어가는 밤, 수많은 파티 플래너가 새벽잠을 줄여가며 온 뉴욕을 하룻밤 사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바꾸는 마법을 부리는 그날의 자정보다 조금 이른 심야 22시. 뉴욕 연예인들은 다 여기 모여 산다는 소문이 자자한 맨해튼 콘도의 한 유닛에서 현재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두 사람이 모여 있었다. “얼른 와요, 올리버. 곧 시작한다고요.” “아하하. 금방 갈게요. 신디가 절 이렇게 애타게 찾다니 좀 신선한 기분이네요.” “무슨 뜻이에요, 그 말?” “그야……” 말꼬리를 늘리며 올리버는 답 대신 맥주 두 병을 테이블에 올렸다. 주위에는 나초나 팝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브라우니 등 순 신디 취향이다. 영화 보면서 간식거리를 먹지 않는 편인 그의 취향도..

with.주노 2023.12.03

37) LA LA LAND MAKE FILM

with. 올리버 멋진 합작 주소는 여기! https://t.co/oW6ntLNEYu 더보기 LA LA LAND MAKE FILM by Gayu, HS October. 2023 FADE IN. INT. 극장 - 밤 조명이 꺼진 어두운 극장, 커다란 스크린이 하얀빛을 뿜는다. 제작사 로고를 위한 긴 애니메이션이 지나고, 영화의 로고와 함께 음악이 재생된다. 풍성하고 웅장하다. [트랙1: 서곡]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표정을 카메라 워크로 훑어내리다가, 이윽고 초점이 스크린 안으로 빨려든다. 빛이 뚝, 끊긴다. INT. 인터뷰 룸 - 낮 같은 장소, 하지만 다른 시간. 두 사람이 각각 인터뷰하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인터뷰어: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 올리버: 올리버 워렌입니다. 음, 배우 겸 감독이라..

with.주노 202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