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157

AF::019 오늘의 일기 11월 29일

: 오드리 포트 겨울이 오기도 전에 목새마을은 일찌감치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보다 이 지역은 언제든 눈이 내리고 있어서 새삼스럽지도 않네요. 14년을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자랐는데 이사한 곳은 1년 365일 눈이 덮인 곳이라니 저도 참 중간이라는 게 없나 봐요.그렇지만 처음 즐긴 목새마을의 여름은 기분이 좋았어요. 선로의 건너편은 아직 눈이 남아 있었지만 마치 밀물과 썰물의 경계가 달라지듯 눈이 녹은 지역이 점점 더 넓어져서, 그 아래로 대신 푸석푸석한 갈색 풀들이 드러나고 머지않아 1년에 한 번, 짧은 여름동안 햇빛을 받아 푸른색을 되찾았거든요.목새마을의 여름은 꼭 기적만 같았어요. 아름답고 생기 넘치고 푸르고 시원한 계절. 처음 겪어보는 계절이었죠. 그러다가, 에취.금세 재채기가 나오는 계..

AF::018. 오늘의 일기 10월 11일

: 올리브 아빠랑은 여전히 매일매일 전화하고 있어요. 아침에도 하고 밤에도 하고. 어떤 날은 짧게 끝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30분씩 1시간씩 하기도 하는데 그 덕분일까요. 바로 옆에 있는 게 아닌데도 아빠랑 변함없이 함께 있는 기분이에요. 우리 거리가 아주 가깝다고요.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렇지도 않았나 봐요.[사실은 말이다. 나는 네가 곧 돌아올 줄 알았어.]어느 밤, 아빠가 문득 말을 꺼냈어요.[여행이 힘들거나 집에 가고 싶거나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말이다. 여기가 네 집이니까. 때가 되면 돌아올 줄 알았단다.]그런데 그것도 내 욕심이었던 모양이야. 하고 아빠는 조금 힘없이 웃었어요.[디모넵. 그곳이 이제 네 새 집이니?]──이곳, 꽃향기마을의 집은 예전 집이 되어버렸어? 묻는 아빠의 물음에 ..

AF::017. 오늘의 일기 6월 29일

: 린 유우 “그럼 나중에 만나요.”전화를 끊은 디모넵은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들고 갸웃거렸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꼭 3일 낮 땡볕에 노출되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시들시들하게 익은 풀 같았다. 그러고 보니 유우는 더위에 약했던가. 그의 체온은 평균보다 살짝 낮아서, 만지면 이쪽이 시원해지곤 했는데 정작 그 본인은 더위에 약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파충류….’동물에 비유하자면 까칠한 고양이, 아니면 예민한 토끼라고 몰래 생각해 왔었는데 이렇게 보니 유우에게서 자기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게 파충류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도 디모넵은 텟샤의 체온을 꼼꼼하게 조절해주고 나온 참이다. 유우도 지금쯤 흐물흐물해진 걸까.―상상하고 몰래 웃었다.“시원한 마실 거라도 사갈까, 테페?”작은 ..

AF::016. 오늘의 일기 6월 19일

: 니켈 “도시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아요.”“저도 이제 디모처럼 새로운 자리가 생긴 거니까.”그렇게 말하는 니켈은 무척 어른 같으면서 동시에 천진하게도 보였습니다.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의 얼굴과 그 속에서 꿈을 찾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동시에 있었습니다.그런 니켈의 얼굴을 보고 저는 안심하였습니다.・・・폴과 닉이 함께 있는 풍경은 재미나다. 겉보기부터 다른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 서로 지닌 온도도 참 달라서 사랑이라는 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끌려간다고 하는 설명을 두 사람을 보며 알 것 같았다.딤이 이런 말을 하면 닉은 “그렇지 않아요, 디모. 우리 이래 봬도 공통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고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고 싶어 할 것이고 폴은 “그야 다르지. 살아온 환경부터, 또 성격도…….” ..

AF::015. 오늘의 일기 6월 13일

: 디모넵의 요리에 휘말린 사람들 오늘은 요리에 도전하는 n번째 날이에요! 저 미지수는 뭐냐고요? 저도 몇 번째인지 안 세고 있거든요. 언제까지 도전이란 타이틀을 붙일지 모르겠어요. 제게 요리가 도전이 아니게 되는 날까지 계속 이럴지도 몰라요.왜 요리에 도전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냐고 하면은 제 요리가 아무래도 맛이 없다는 깨달음과 이대로 있을 순 없다는 자기반성 및 성찰을 거치고 각성하였기 때문이에요.솔직히 말해서 제 입에는 아무래도 괜찮은데 말이죠.‘맛이 없어.’‘맛이 안 나는데.’‘맛 없잖아.’같은 얼굴로 먹는 상대를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자극을 안 받을 수 없잖아요. 에, 리브 욕이냐고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게 다아 제가 맛없는 요리를 만든 탓이죠.(쑻)……이번 일기는 리브에게 들키면 안 될..

AF::014. 오늘의 폭주 5월 6일

: 올리브 이렇게 틈을 보이고 무게를 허락해주면 말이죠. 금세 어리광을 부려버리고 말아요.“그럼 한 번만, ──눈 감아줘.”이렇게요.쉽게 나온 말은 아니에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숨을 조이는 것만 같았어요. 심장이 쿵쾅거려서 그 소리로 머리가 꽉 차서 리브가 무슨 답을 주든 들을 자신이 없었어요.멋대로 상상하기로는 뭐? 여기서? 지금 당장? 꼭 그런 말이 들릴 것만 같았는데요. 정작 리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한쪽만 드러난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바쁘게 굴러가며 하고 싶은 말이 전부 표정에 담겼죠. 평소 같으면 크게 터져 나왔을 목소리가 다 어디로 먹혀든 걸까요. 그만큼 제가 당신을 당황스럽게 했을까요?그야 그렇겠지만.리브가 자꾸만 저를 허락해주니까 어디까지 허락해줄 건지 그 선을 분명하게..

AF::013 오늘의 꿈 5월 1일

: 얀 바이올렛 스물한 살의 생일 전날 밤은 매해가 그러했듯 무척이나 설레었습니다. 하루 일찍 도착한 친구들의 생일 선물, 자정을 기다리는 축하메시지, 내일을 기대하라는 동거인의 자신만만한 표정. 하루하루가 꽃피는 봄날처럼 행복하고 평온하지만 1년에 한 번 오는 기념일이란 유독 각별해서 그 날 밤 침대에 누우면서도 괜한 설렘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당신이 보내온 선물도 매해 그러했듯 잘 도착해 있었습니다, 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지가 언제였지요.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는 당신의 모습이 한 때는 도통 상상이 가지 않았었는데, 받은 편지와 선물이 나날이 쌓여만 갑니다. 내일 케이크와 함께 개봉할 21번째 생일 선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문득 떠오른 감상은 이날을 기점으로 제가 첫 만남의 당신과 같은 나이가 되..

AF::012 오늘의 폭주 4월 26일

: 케이 바스락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셔츠 끝이 구겨지고, 주름 잡힌 자락을 어깨부터 벗겨 내리던 손이 그 소리를 의식하듯 또 잠시간 멈추더라고요. 이러고 1, 2, 3…… 기다리면. 하아, 한숨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말해오겠죠.“디디, 정말로 괜찮아요?”이러다 하루가 꼬박 다 지나버리겠어요. 벌써 몇 번째인지. 덕분에 긴장이 풀린 건 다행이었지만요. 키티는 알까요? 당신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저를 더 물러나지 못하게 한다는 걸요.살짝 고개를 들자 긴장한 얼굴이 보였어요.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결연한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그런 척만 하고 눈동자 너머로는 여전히 번뇌가 오가고 망설임이 소용돌이 치고 있진 않은가요. 당신은 어느 때든 머뭇거리는 법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하긴..

AF::011 오늘의 일기 4월 26일

: 오드리 포트 그 사람은, 오드리 씨는, 언니는 한 마디로 말해서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꼭 말장난 같죠. 그치만요. 사람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으면서 그 중에서도 오드리 언니는 유독 표현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어요.그럼에도 굳이 한 줄로 언니를 나타내보라고 한다면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지금도 저는 언니의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을 보고 있답니다.“Let’s go in the garden♪ You’ll find something waiting.”정확히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에요. 머리 위로 자장가가 들려왔거든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의 경위는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기로 할게요. 여기서 잘 봐두어야 할 건 제가 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것이나 덜 자란 ..

AF::010. 오늘의 꿈 4월 21일

: 올리브 꿈을 꾸던 날의 밤은 빗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지붕을 두드리며 투둑, 툭, 투둑. 리듬감 있게 울려 퍼지는 빗소리에 자연스럽게 콧노래가 나왔다. 내일은 갠다고 했지. 비가 갠 다음 날의 아침 공기를 유독 사랑하는 디모넵은 내일 더 일찍 일어날 것을 다짐했다. 흠뻑 젖은 땅이 햇빛을 받으며 말라가는 시간을 놓칠 수야 없었다. 암, 놓쳐선 안 되지.질척질척한 진흙탕 위로 아끼는 장화를 신고 나가서, 잎이 마르도록 함께 볕을 쬐는 건 아이의 소중한 취미 중 하나였다. 목새마을의 땅은 어떤 냄새를 풍기며 마를까. 보글보글 진흙탕이 끓어오르는 풍경을 그리며 평소보다 일찍 이불을 덮은 아이는, 그러고선 기묘한 꿈을 꾸었다.“좋아해요, 올리브 씨.”“난 너 안 좋아해.”뜬금없는 대담을 두고 아주 놀랍고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