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157

021. 오늘의 친구 1월 11일

: 와이 당신과 나란한 나와 겹쳐지는 우리가 ◆달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장아장한 걸음으로 현관까지 걸어가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를 바라보던 내 눈과 나를 바라보던 여자의 눈, 어느 쪽이 더 서먹하였을까.「돌아왔습니다.」가장 오래된 그 사람과의 기억은 4살인가 5살 즈음. 당시의 나는 낯을 가리는 꼬마였다고 아빠는 말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돌아온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아빠 다리에 찰싹 붙어 말했다지.「누구…?」내 물음에 충격을 받은 건 아빠 쪽이었고 허겁지겁 해명하려는 아빠를 두고 엄마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답했다고 한다.「달리아 라지엘이라고 합니다. 디모넵 씨」보통 이럴 땐 엄마라고 해주지 않나. 아무튼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유별난 것은 조금 더 자라..

019-020. 오늘의 아르바이트

019. 오늘의 아르바이트 1월 8일 드디어 북새마을에 도착했어요! 갑작스런 노숙으로 감기 같은 것에 걸려버리고 말았지만 마을에서 쉬는 동안엔 괜찮아지겠죠. 그런데 박사님 뒤를 졸졸 쫓아 북새마을의 한켠의 아늑해 보이는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에는 ‘휴무일’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니겠어요?이럴 수가─!오로지 따뜻한 방과 침대만을 믿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너무나 가혹한 일이에요, 박사님. 그렇게 문앞에서 주르륵 주저앉아버릴 뻔했을 때, 안쪽에서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사장님이 나와주셨어요.“아이고, 어서 와요! 박사님, 그리고.. 트레이너 캠프지요?”이 여관의 주인인 헤이즐 씨라고 해요. 귀여운 따님인 피칸 씨도 함께인 왁자지껄 즐거운 여관이에요. 저는 몰랑 씨에게 주워졌다가 로드 씨에게 양도되었다가..

018. 오늘의 친구 1월 8일

: 린 테리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테리는 내게 무슨 말을 해올까. 상상하던 디모넵은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꽃은 말하지 못한다. 꽃은 움직이지 못한다. 꽃은 모든 것을 듣고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다. 디모넵에게 꽃들은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이었다.꽃들은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테리. 미워.」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억지나 다름없는 원망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 앞에 서 있는 아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고 밀어냈다. 그 때의 기억은 디모넵의 마음속 아주 깊숙한 곳에 자물쇠로 꽁꽁 잠가 숨겨져 있었다. 제 말을 듣고도 테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으니까, 그대로 모른 척 하려고 했다.하지만 만약 테리의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면, ──테리는 그 때의 일을 말..

016-017. 오늘의 일기와 어드바이스

좀비처럼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으려니 옆에서 테리가 세상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지 뭐예요. 그렇게 보지 말고 테리, 약이라도 갖다 줘. 약이랑 같이 꿀도. 약은, 싫어. 쓴 건, 싫어.테리는 ‘벌써 14살이나 먹었잖아요. 아직도 약이 쓰다고 떼나 쓰려는 거예요?’ 같은 눈을 한 것 같아요. 흑흑, 테리. 미각은 나이와 상관없잖아. 너도 단 걸 좋아하면서 그러기야. 그러자 옆에서 테비가 맞아, 맞아. 하고 날개를 파닥이며 제 열 오른 머리에 부채질을 해주었어요. 상냥하기도 하지.테리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가방으로 가서 잎을 구부리고 꼼지락꼼지락 안을 뒤지더니 감기약과 함께, ……충격 받은 얼굴로 제게, 빈 병을 보여주었어요. 아아니, 세상에. 저건 나의 전재산 꿀이 아니던가! 왜 텅 비어 있는 거지? ..

013-014-015. 오늘의 포켓몬과 친구

몰랑 씨에게 얻어온 꿀을 테리랑 둘이 살짝 맛봤어요. 테리는 물에 잘 녹여서 주었고 저는 우유에 녹여서 마시고, 둘이서 냠냠챱챱 맛을 본 결론은 오옷 이 꿀 엄청나잖아? 였어요. 우리집 꿀이랑 어디가 더 좋은지 굳이 그런 편 가르기는 하지 않을게요.그렇지만 체리베리 플라워샵의 꿀은 언제나 최상급이니 흥미 있으신 분은 (이하 전화번호, 웹사이트 주소, 택배 안내, 종류와 가격 등이 줄을 이었다. 늘 있는 일이다. 금세 자기 가게 어필을 해버리는 것은.) 이쪽으로 연락해주세요. 디모넵의 이름을 팔면 덤도 얹어 준답니다.꿀은 요즘 같이 감기가 유행할 적에 특히 몸을 따뜻하고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일에도 좋고 먹는 건 물론 발라서 미용에 쓰기도 좋다고 하죠. 심지어 꿀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을 만큼..

012. 1월 4일 오늘의 일기

오늘은 캠프 사람들과 배틀을 하는 모의전이 있는 날이에요. 캠프가 지나는 길목의 다른 호프 트레이너와 겨루거나 야생 포켓몬과 겨루는 일은 몇 번 있었지만 캠프 사람들끼리의 배틀은 처음이네요. 캠프에는 엄청 호전적인 트레이너도 한 분 있는데요. 박사님의 허가 없이는 캠프 안에서는 배틀을 할 수 없어서 그 사람도 근질근질한 걸 오랫동안 참아온 것 같아요.그래요. 캠프는 말하자면 우리의 이동하는 마을이니까, 규칙을 지켜주어야겠죠!제 상대는 와이 씨와 노체 씨였어요. 노체 씨는 제 테리와 서로 상성 상관없이 대결하기로 해준 분이고 와이 씨는 그냥 제가 하고 싶었어요. 저는 자기 전에 미리 두 사람의 포켓몬을 조사했는데요.“노체 씨는 에나를 내보내겠지. 테리, 에나와 겨룰 거야. 괜찮지?”테리는 걱정 말라는 듯 ..

011. 1월 3일 오늘의 포켓몬

페어리 타입에 욕심이 있냐고 하면 특별히 그건 아닌데 말이죠. 가장 좋아하는 건 풀 타입, 그렇지만 다른 타입들도 차별 없이 좋아하고 물론 페어리 타입도 평범하게 좋아해요. 그러니까 특・별・히 페어리 타입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알고 있어요? 페어리 타입이란 제법 최근 분류된 타입이에요. 칼로스 지방의 어떤 학자가 새로 밝혀낸 분류법이라고 하던가요. 덕분에 기존의 페어리가 아니었던 타입들도 대거 새롭게 분류가 되고 우르르 새로운 책과 도감이 쏟아지고, 그러니까 페어리 타입이란 무엇인지 다른 타입에 비해 잘 모르는 만큼 관심을 갖고 있긴 했어요.서론이 길다고요? 그-러-니-까, 제, 제 말은 즉! 따, 딱히, 제가 페어리, 같, 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말이 아니었어요! 정말, 네버..

010. 오늘의 친구 1월 3일

: 프로키온 체리베리 플라워샵의 호객 포인트라면 역시 배달 서비스가 아닐까. 꽃향기마을엔 많은 꽃가게가 있지만 다른 마을까지 배달을 해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워낙 시골이기도 하고 이 마을의 주수입은 관광업으로 꽃가게의 존재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에 가까웠다. 어딘가의 꽃가게는 커플이 세일즈 대상이고 어느 꽃가게는 가족단위, 어디는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들, 어디는 포켓몬 콜라보. 플라워 카페라고 해서 꽃차가 메인인 곳도 있지.그 사이에서 디모넵의 가게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표방하는 곳이었다. 즉, 찾아오는 관광객 대상이 아니라 꽃향기마을 바깥으로 뻗어가는 가게. 과거에는 아버지가 스쿠터를 끌고 하던 일이었고 10살 때 자전거 면허를 딴 뒤부터는 디모넵이 맡게 된 일이었다. 보통은 하루 전에 예약을 ..

009. 오늘의 일기 1월 1일

새해가 밝았어요. 아직 밝지는 않았지만요 정확히 표현을 하자면 헌 해가 저물고 지금은 새로 시작하는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밤이네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어쩐지 무슨 일이든 잘 풀리고 잘 해낼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과 확신에 차오르는 새해 버프 바겐세일인 거죠. 무려 3일간 특가! 같은 느낌으로요.저도 그런 기분으로 한참을, 한참을 포켓리스트에 저장된 두 글자 이름을 바라보고 머뭇거렸어요. 이 이름을 향해 전화를 걸까 말까.『엄마』그 두 글자가 말이죠. 저는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긴 것처럼 느껴져요. 예전에는 심술이 나서 엄마 대신 ‘달리아 씨’라고 저장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봤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그보다 아빠가 발견하면 슬퍼할 테니까요.……오늘 있잖아요. 린 씨가, 아 린..

008. 오늘의 친구 12월 31일

For. 쟈키 오늘은 점심도 저녁도 요리 교실이에요.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앞치마를 꺼내고 빵모자 대신 조리모를 쓰고 테리와 테비와 함께 조리대 앞에 서보았어요. 점심에는 다 같이 만들었지만 저녁은 아무래도 다들 탐험으로 바쁜 것 같아서 말이죠. 그리고 끝나고 와서 먹을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번엔 간단하게 내 몫이랑 쟈키 씨 몫을 만들기로 했어요.쟈키 씨는 눈색도 머리색도 말하는 것도 재미난 사람이에요. 무척 예쁘고 또 먹보인 미뇽을 데리고 있는ー그 사이에 새 친구가 둘 더 는 것 같아요─사람인데요. 말투는 되게 퉁명스럽고 틱틱대는 것 같은데 사실은 되게 사려 깊고 상냥한 사람이에요. 엄청 툴툴대면서도 결국 엄청 달달하고 맛있는 핫초콜릿도 만들어줬거든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제 사소한 잡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