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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오늘의 일기 1월 14일

027. 오늘의 일기 1월 14일 트레이닝백을 통해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나무열매를 쥐어주고 영양분 듬뿍인 요리를 해주고 깨끗하게 씻겨주고 사랑한다 안아주고 꼬옥 끌어안고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해도 마음 한구석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어요.모두가 하니까 따라 도전하는 체육관, 배틀은 특별히 싫지도 좋지도 않지만 어느 쪽이냐 하면 즐거운 것도 같아. 나는 트레이너니까. 하지만, 그렇지만……나는 너희가 다치는 걸 이제껏 보고도 못 본 척 하던 게 아닐까.포켓몬 센터에만 가면 뚝딱 낫는다고 말이에요. 그런다고 너희가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닌데. 그 때 문득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배틀은 즐거워요. 내 포켓몬 모두와 의논하고 전략을 짜고 경기장에 서서 상대방을 마주 보죠. 우리의 눈과 눈이 마주치면 ..

026. 오늘의 아르바이트 1월 14일

그 첫 번째, 북새마을 여관 안녕, 아빠. 건강하신가요? 저는 라이지방에서 새 직업을 찾았어요. 그건 바로…… 여관 종업원! 사실 이게 제 천직인 게 아닐까요? 우리 플라워샵에서도 느꼈지만 저는 판매직이 맞나 봐요, 아빠. 아이 참, 테리. 옆에서 그렇게 흰눈으로 보지 말고 동의 좀 해줘. 뭐? 시합을 앞두고 현실 도피 하지 말라고? 으으으.하지만 진지하게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캠프에 와서 다른 분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다들 장래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이미 정해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가 온 사람도 있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우리 가게에서 일하던 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예요. 트레이너 캠프에 온 것..

025. 오늘의 기술 1월 14일

이제까지 포켓몬 배틀을 해봤느냐고 하면 당당하게 3년 경력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정확히 3년간 승부한 상대라고는 곤충채집 소년 1, 곤충채집 소년 2, 곤충채집 소년 3, 이하 등등등. 대개 마을 밖으로 나가면 ‘눈과 눈이 마주치면 배틀!’이라고 요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애어른 할 것 없이 있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업에 바쁜 사람을 붙잡을 정도로 눈치 없이 구는 건 저 꼬마들 정도였어요.그럼 매번 저 애들을 다 테리로 상대했냐구요? 에이. 쟤네들 대부분 테리랑 상성이 나쁜 포켓몬들을 데리고 다니는걸요. 꼬맹이들 전용으로 아빠에게 빌려온 몬스터볼이 늘 있었죠. 배틀은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시비 걸어오는 꼬맹이들에게 100원, 200원씩 받아내는 건 꽤 쏠쏠했어요.그렇다고 한 번도 져보지 않은 ..

024. 오늘의 아르바이트 1월 13일

024. 오늘의 아르바이트 1월 13일 다시 그 첫 번째, 포켓몬 센터 도우미 “어서 오세요, 포켓몬 센터입니다~”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요? 포켓몬 센터라는 건 즉, 그러니까…… 너무 이것저것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그냥 포켓몬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는 정도만요. 스위티 씨가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이돌 같고 반짝반짝하고 솜사탕 같다는 정도가 아는 걸까요. 음, 이 정도면 훌륭히 다 아는 것 같기도 하고.“아, 몬스터볼은 200원입니다. 5개 하시니까… 1000원이네요. 네에, 현금 받았습니다.”한쪽에서는 다친 포켓몬들의 치료가 이루어지거나 부족한 물건을 채워 넣거나 바쁜 것 같았어요. 귀염둥이 직원 씨가 아주 능숙하게 돌봐주더라고요. 저한테도 해보실래요? 하고 물어봤는데 으음~…….역시 상처를 ..

023. 오늘의 어드바이스 1월 12일

023. 오늘의 어드바이스 1월 12일 당연하다는 듯 새싹이 돋을 수도 있죠. 어릴 땐 화분에서 살았던 적도 있는걸요. 네? 농담이냐고요? 정말인데. 여기 어릴 때 사진도 있고요. 뭘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람. 사람이 좀 싹부터 날 수도 있죠. 아빠가 그랬는데요. 사람의 아이는 새 포켓몬이 물어다주는 거랑 다리 밑에서 주워오는 거랑 알에서 태어나는 거랑 몇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해요. 그 중에 저는 좀 특이 케이스라던가.에엣? 전 정말 진지한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떠들다가 고개를 들었어요. 아무 씨는 아직도 제 머리 위의 싹이 신기한가봐요.“아무튼 아무 씨. 제 싹을 키우고 싶다면 앞으로도 애정과 관심을 잘 부탁…… 참, 이게 아니라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데요.”어제는 2패나 하고 말았어요. 아무..

022. 오늘의 일기 1월 11일

“오늘 내가 너희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반성회를 위해서다!”제 선언에 저의 다섯 마리 포켓몬들은 하나같이 심드렁한 얼굴을 했어요. 아앗, 저기. 얘들아. 너무하지 않아? 테루테루는 요즘 연이은 배틀로 지쳤는지 추욱 늘어져 엎드린 채로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었고 테비는 흙바닥을 콕콕 쪼며 먹이를 찾지 뭐예요. 테마리는 또 혼자 성이 나 있고 테토는 벌써 정신이 다른 데로 팔렸는지 혼자 통통 튀며 멀리 가려는 걸 겨우겨우 붙잡았어요. 테리로 말하자면,“테리. 아직도 아파?”화상 연고를 발라준 곳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어요.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테리. 보통 상식적으로 포켓몬 센터를 다녀오면 깨끗이 낫잖아. 그런데도 보란 듯이 얼음찜질을 하는 건 나를 향한 항의의 표시야? 시위야?제 물음에 테리는 ‘아이고, ..

021. 오늘의 친구 1월 11일

: 와이 당신과 나란한 나와 겹쳐지는 우리가 ◆달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장아장한 걸음으로 현관까지 걸어가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를 바라보던 내 눈과 나를 바라보던 여자의 눈, 어느 쪽이 더 서먹하였을까.「돌아왔습니다.」가장 오래된 그 사람과의 기억은 4살인가 5살 즈음. 당시의 나는 낯을 가리는 꼬마였다고 아빠는 말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돌아온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아빠 다리에 찰싹 붙어 말했다지.「누구…?」내 물음에 충격을 받은 건 아빠 쪽이었고 허겁지겁 해명하려는 아빠를 두고 엄마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답했다고 한다.「달리아 라지엘이라고 합니다. 디모넵 씨」보통 이럴 땐 엄마라고 해주지 않나. 아무튼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유별난 것은 조금 더 자라..

019-020. 오늘의 아르바이트

019. 오늘의 아르바이트 1월 8일 드디어 북새마을에 도착했어요! 갑작스런 노숙으로 감기 같은 것에 걸려버리고 말았지만 마을에서 쉬는 동안엔 괜찮아지겠죠. 그런데 박사님 뒤를 졸졸 쫓아 북새마을의 한켠의 아늑해 보이는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에는 ‘휴무일’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니겠어요?이럴 수가─!오로지 따뜻한 방과 침대만을 믿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너무나 가혹한 일이에요, 박사님. 그렇게 문앞에서 주르륵 주저앉아버릴 뻔했을 때, 안쪽에서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사장님이 나와주셨어요.“아이고, 어서 와요! 박사님, 그리고.. 트레이너 캠프지요?”이 여관의 주인인 헤이즐 씨라고 해요. 귀여운 따님인 피칸 씨도 함께인 왁자지껄 즐거운 여관이에요. 저는 몰랑 씨에게 주워졌다가 로드 씨에게 양도되었다가..

018. 오늘의 친구 1월 8일

: 린 테리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테리는 내게 무슨 말을 해올까. 상상하던 디모넵은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꽃은 말하지 못한다. 꽃은 움직이지 못한다. 꽃은 모든 것을 듣고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다. 디모넵에게 꽃들은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이었다.꽃들은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테리. 미워.」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억지나 다름없는 원망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 앞에 서 있는 아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고 밀어냈다. 그 때의 기억은 디모넵의 마음속 아주 깊숙한 곳에 자물쇠로 꽁꽁 잠가 숨겨져 있었다. 제 말을 듣고도 테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으니까, 그대로 모른 척 하려고 했다.하지만 만약 테리의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면, ──테리는 그 때의 일을 말..

016-017. 오늘의 일기와 어드바이스

좀비처럼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으려니 옆에서 테리가 세상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지 뭐예요. 그렇게 보지 말고 테리, 약이라도 갖다 줘. 약이랑 같이 꿀도. 약은, 싫어. 쓴 건, 싫어.테리는 ‘벌써 14살이나 먹었잖아요. 아직도 약이 쓰다고 떼나 쓰려는 거예요?’ 같은 눈을 한 것 같아요. 흑흑, 테리. 미각은 나이와 상관없잖아. 너도 단 걸 좋아하면서 그러기야. 그러자 옆에서 테비가 맞아, 맞아. 하고 날개를 파닥이며 제 열 오른 머리에 부채질을 해주었어요. 상냥하기도 하지.테리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가방으로 가서 잎을 구부리고 꼼지락꼼지락 안을 뒤지더니 감기약과 함께, ……충격 받은 얼굴로 제게, 빈 병을 보여주었어요. 아아니, 세상에. 저건 나의 전재산 꿀이 아니던가! 왜 텅 비어 있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