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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012 오늘의 폭주 4월 26일

: 케이 바스락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셔츠 끝이 구겨지고, 주름 잡힌 자락을 어깨부터 벗겨 내리던 손이 그 소리를 의식하듯 또 잠시간 멈추더라고요. 이러고 1, 2, 3…… 기다리면. 하아, 한숨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말해오겠죠.“디디, 정말로 괜찮아요?”이러다 하루가 꼬박 다 지나버리겠어요. 벌써 몇 번째인지. 덕분에 긴장이 풀린 건 다행이었지만요. 키티는 알까요? 당신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저를 더 물러나지 못하게 한다는 걸요.살짝 고개를 들자 긴장한 얼굴이 보였어요.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결연한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그런 척만 하고 눈동자 너머로는 여전히 번뇌가 오가고 망설임이 소용돌이 치고 있진 않은가요. 당신은 어느 때든 머뭇거리는 법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하긴..

AF::011 오늘의 일기 4월 26일

: 오드리 포트 그 사람은, 오드리 씨는, 언니는 한 마디로 말해서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꼭 말장난 같죠. 그치만요. 사람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으면서 그 중에서도 오드리 언니는 유독 표현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어요.그럼에도 굳이 한 줄로 언니를 나타내보라고 한다면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지금도 저는 언니의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을 보고 있답니다.“Let’s go in the garden♪ You’ll find something waiting.”정확히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에요. 머리 위로 자장가가 들려왔거든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의 경위는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기로 할게요. 여기서 잘 봐두어야 할 건 제가 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것이나 덜 자란 ..

AF::010. 오늘의 꿈 4월 21일

: 올리브 꿈을 꾸던 날의 밤은 빗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지붕을 두드리며 투둑, 툭, 투둑. 리듬감 있게 울려 퍼지는 빗소리에 자연스럽게 콧노래가 나왔다. 내일은 갠다고 했지. 비가 갠 다음 날의 아침 공기를 유독 사랑하는 디모넵은 내일 더 일찍 일어날 것을 다짐했다. 흠뻑 젖은 땅이 햇빛을 받으며 말라가는 시간을 놓칠 수야 없었다. 암, 놓쳐선 안 되지.질척질척한 진흙탕 위로 아끼는 장화를 신고 나가서, 잎이 마르도록 함께 볕을 쬐는 건 아이의 소중한 취미 중 하나였다. 목새마을의 땅은 어떤 냄새를 풍기며 마를까. 보글보글 진흙탕이 끓어오르는 풍경을 그리며 평소보다 일찍 이불을 덮은 아이는, 그러고선 기묘한 꿈을 꾸었다.“좋아해요, 올리브 씨.”“난 너 안 좋아해.”뜬금없는 대담을 두고 아주 놀랍고 또 ..

AF::009. 오늘의 AU 4월 14일

: 닉스 & 포르티스 & 올리브 ▶거주민, 소중한 친구들 소개 1.오늘은 제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친구들을 몇 명 소개해보려고 해요. 이 숲의 모두가 제 소중한 친구이지만 그 중 몇 명을 먼저 말이죠. “다녀오겠습니다~”크로스백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챙겨 넣고 모자를 챙겨 집을 나섰어요. 모자는 평소엔 잘 안 쓰는데요. 가끔 인간들을 만나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 때 뿔을 가리라고 들고 다녀요. 인간들은 제 뿔을 지나치게 좋아하거든요.그럼 오늘도 인간을 조심해서 길을 찾아볼까요?혼혈들의 땅이 얼마나 커다란지는 저도 아직 모르는데요. 이 땅이 보통의 눈으로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무슨 소리냐 하면…… 으응,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목적도 없이 걸으면 아무데나 도착해버려요. 어떨 땐 집에서 여덟 걸음만..

필름이 돌아가는 건너편

: 루 모겐스 사랑이란 감정을 소리로 표현해내는 것이 그녀는 여전히 경이로웠다.앞으로도 쭉 그녀에겐 경이롭고 놀라우며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것으로 남을 것이다. 익숙해지는 순간 제가 저로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토록,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사랑해, 루.”간절함을 입에 담는 일은.・・・마르지 않은 나뭇결의 냄새가 선명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벽난로 불길이 두 사람이 앉은 소파까지 닿아옴에도 그 집은 여전히 젖은 공기와 새집 냄새를 풍겼다. 직접 고른 목재, 손수 칠한 벽, 손으로 훑어가며 시공이 끝난 걸 꼼꼼히 확인하였는데, 가시지 않는 풋내가 아직 이곳이 낯설기만 한 마음을 반증하는 것 같았다.“이리 와, 에슬리.”기묘한 건 그 모든 낯섦이 먼저 가 손을 내미는 그의 존재 하나로 아무렇지 않게..

with.루 2020.04.19

AF::007. 오늘의 일기 4월 11일

: 피칸 맥파이 ::꽃반지, 약속, 혼자가 아닌 강함 모두와 헤어지던 그 마지막 날의 이야기예요. 한 명, 한 명 기차에 오르는 걸 보면서 대단히 묘한 기분이었어요. 3개월을 함께한 친구들과 이별인걸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죠.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닌데도 쓸쓸하고 허전하고 섭섭하고…… 한편 오묘한 기분인 건 다른 이유도 있었어요.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저는 기차를 타는 쪽이고 역에 남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어 이별할 거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눈 깜빡하는 사이 뒤집히고 만 위치가 오묘하더라고요.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 이곳에 남아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는 거죠. 그게, 무어라고도 말 못 할 기분이어서 열차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한참 그 자리에서 모두를 배웅했어요.그러고선 막 돌아서는데 ..

AF::006. 오늘의 AU 4월 8일

::어느 챌린저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 저는 지금 막 3번째 배지를 딴 초보, 아, 아니. 호프 트레이너입니다. 일단은 그, 채, 챔피언 지망이에요. 하지만 매 체육관 너무너무 힘겨워서 이번에야말로 정말 무리인가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이겨버리고 말았어요.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아 얼떨떨하네요. 눈앞의 관장님은 몇 번이고 저를 두고 혼자 질주해버렸는데, 어떻게 이긴 건지.[Yeeee~~~!! 멋진 배틀이었어요, 챌린저. 이것으로 3번째 배지도 무사히 GET~!! 이라고? 챔피언으로 향하는 계단을 또 한 번 오릅니다. 축하해요!]저를 응원해주는 목소리만이 저보다도 더 신이 나고 기뻐하며 축하를 해주었어요. 그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직도 비틀거리면서 서 있는 파트너를 허둥지둥 볼에 되돌렸어요.3번째..

AF::005. 오늘의 폭주 4월 7일

: 올리브 ──소파 위로 자국을 남기며 움츠러드는 손을 애써 잡지 않았어. 리브의 거리감을 그냥 두었어. 뚫어져라 리브를 응시하고 답을 기다리는 것도 같았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었어.당연한걸. 아주아주 떨리는 일이었으니까. 그저 이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리브의 말의 유일한 청자가 되어 얌전히 기다렸지.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하고.나는 있지. 눈치가 빨라서 리브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숨기려 들 때, 꼭 그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걸 두고 농담처럼 사이코 파워라고 하거나 미래예지라고 하거나 독심술이라고 하거나 여러 가지 이름으로 포장하면서도 사실 진짜로는 어떻게 하는 건지 굉장히 커다란 나만 아는 비밀이 있어.진실은 어떤 요령도 눈치도 마..

AF::004. 오늘의 꿈 4월 5일

오늘의 주인공!! 『빰빠라밤밤빰빰, 빰빠라밤밤바─밤!』무거운 입구가 열리자 체육관의 조명이 반짝, 켜지고 스포트라이트가 단숨에 입구로 집중되었어요.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친구는 이미 여기서부터 움찔거리고 위축된다고 해요. 그야, 인생에서 이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그래서 저는 더 좋아해요. 우리 체육관의 이 조명 장치를. 오늘도 열심히 일 해주는 조명 스태프에게 찡긋, 윙크를 해주며 메가폰의 스위치를 올렸어요. 그리고 아직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한지 불안하게 눈을 굴리는 친구의 소개를 대신 해주었어요.「오늘의 챌린저는~? 자귀마을에서 올라온 반바지 소년, 토마 군! 와아, 박수 박수.」“너어~! 거기 꼼짝 말고 기다려. 꼭 갈 테니까!”글쎄 제가 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