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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11.10. 락樂 : 아토체육관 도전

ㅡ아토체육관 챌린저 클래스 더보기 “다시 챌린저 클래스로 돌아와버렸다는 거야.” 게시판에 이름을 적어놓고선 능란은 으으으음~ 하고 특유의 입매를 우물우물거리며 웃었다. 헤쭉, 나오는 표정은 거대한 도전을 앞에 두고 긴장되고 근질거려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조금 더 궁지에 몰린다 싶으면 자폭해버리는 본인의 못난 버릇은 이제 고쳐진 건지 어쩐 건지. 다만 그렇게 궁지에 몰리지 않도록 스스로 덜어내는 법을 익혔다. 이번에도 그렇다.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다가 먼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어깨의 힘을 풀어야 했다. “──라는 게 말은 좋지마안, 이기고 싶은 마음이 어디 가겠어?” 캠프의 귀염둥이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져도 즐거운 배틀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 몇 번인가 그 마음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만..

043) 11.07. 그 여자의 무서운 이야기

ㅡ보드기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이것은 우리가 아직 심지의 배후를 모르던 때의 이야기이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뭘 셋이서 우르르 몰려다니느냐, 놀러 가더라도 내가 뭣하러 너희랑 가느냐 투덜거리는 비니 소년을 사이에 끼운 채 세 사람은 골갱이 산의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이쪽에 가면 영역 싸움하는 롱스톤이 있냐는 거야.” [그래. 인부들에게 제보가 들어와서 말이야. 보통의 개체보다 커다란 롱스톤 두 마리라고 하더구나! 평범하게 얼터코팅을 한 롱스톤일 수도 있지만. 인부들이 많이 드나드는 공간을 영역으로 잡으려고 하는 롱스톤이라고 하니 빠르게 제지를 하는 게 좋겠더구나.] “응. 우리 셋이면 충분히 진정시킬 수 있을 거예요.” “뭐어, 저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하하하. 그럼 부탁한..

042) 11.06. 붕우(朋友)

ㅡ툰 귀하 더보기 온통 버석버석하고 메마른 희나리 사막 인근으로 마치 사막 위에 떠오른 섬과 같은 땅이 있었다. 경쾌하고 화려한 축제의 도시, 몸체는 돌과 바위로 이루어졌으면서 머리 위로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불을 떨어트리고 발아래는 푸른 물결이 곡선을 그리는 그야말로 자연의 축복을 한몸에 듬뿍 받은 땅. 화랑에서 2번째로 번화한 도시, 아토시티다.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한눈에 보이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제법 고층의 라운지에서 여자는 따뜻한 생강차를 내려 소년에게 건넸다. 머그컵은 하루 종일 마셔도 배부를 만큼 커다란 사이즈였다. 감기는 좀 괜찮아? 단순한 감기가 아닌 걸 알면서도 적당히 감기로 뭉뚱그린다. 대답이 돌아오거든 히죽 웃으며 낮에 근처의 가게에서 사온 과자도 꺼냈다. 차에는 ..

041) 11.04, 이유理由

ㅡ모아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달걀도 삶은 달걀이라면 튕겨져 나올 거란 얘기를 들었는데. 너는 어떤 달걀이었을까.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수란이려나.」 「수란 좋아해? 수란을 얹은 죽통밥이라도 먹으면서 우리 친목을 다져볼까?」 「예약된 일정이 다 끝난다면……」 ──좋아. 리모의 수락에 능란은 히죽히죽 웃으며 배틀 코트를 내려왔다. 포켓몬들이 센터에서 회복되는 동안 어제 썼던 포차에서 요리라도 해두려는 것이었다.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은 좋구만. 사람을 어딘지 느슨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던 그 분위기를 능란도 본받고 싶었다. 곁으로는 코트에 올라가지 않았던 다른 포켓몬들이 몰려왔다. 기운이 넘치는 모모와 위위에게 캠핑장의 장작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하며 능란은 쌀부터 안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 역시 배틀을 준..

040) 11.02. 탈피, 가속(脫皮, 加速)

ㅡ태태 진화 더보기 “몰랐는데. 나, 너희 같은 절지류의 포켓몬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특히 태태는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용의 모습에 오히려 가장 가까운 것도 같아. 언젠가 같이 고산탑을 올라 보자. 고산의 위로 너라는 태산을 보이는 거야.” “오, 시작한다. 시작해. 이거 봐, 지유, 태태.” 능란의 부름에 이브이가 쪼르르 품에 안긴다. 태우지네는 그 긴 몸체로 능란의 몸을 휘감고 올라 트레이너의 어깨에 턱을 툭 올렸다. 인덕션을 연상케 하는 배의 노란 부분은 지금은 열을 최대한 억눌러 적당히 따뜻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태우지네를 휘감아 지내는 요 며칠간 능란은 할머니가 종종 하던 쑥뜸을 떠올렸다. 다음엔 몸에 쑥밴드라도 붙이고 태태에게 지나가라고 해볼까?─불꽃몸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

039) 10.31. 무인지(無人地)의 사원

ㅡ보드기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모래톱길은 예부터 오아시스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었다. 그야 이렇게 굴러다니는 게 흙과 모래와 바위뿐이라면, 꿈트렁처럼 흙이 주식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닐만도 했다. 특히나 희나리 사막의 북부는 마루길과 인접해가면서 불어오는 춥고 짠 바닷바람과 덥고 건조한 사막의 바람이 밤낮으로 뒤바뀌어 조금 더 가혹한 기후를 자랑했다. 거대한 강줄기를 끼고 규모를 키워나가는 아토시티나 도원림 가까이 평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모아마을과는 달랐다. 보드기마을이란, 그 이름이 붙기까지도 참 쉽지 않은 여정이었던 것이다. “얼터스톤이 돈이 된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누가 이런 데서 살 생각을 했겠어.” “가끔 이 안쪽에 있는 사원을 구경하겠다는 괴짜 학..

038) 10.30. 자존심

ㅡ나나 진화 더보기 강렬하게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한차례 대지를 휩쓸고 지나가면, 그 위를 오간 수많은 존재가, 또 흔적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는 일이 순식간이었다. 사막이란 곳이 그랬다. 바다와는 다른 의미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이었다. 우리가 발 디딘 이 아래엔 또 얼마나 많은 잊혀진 것들이 잠들어 있을까. 사막을 걸을 때면 그래서 늘, 무덤 위를 걷는단 생각이 들곤 했다. 가끔은 그 사실에 숙연한 묵념을 보냈고 가끔은 아찔한 공포를 느꼈다. 경이롭기도 했다. 무엇이든간에 만만치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위는 차라리 좋단 말이지. 바다 위에 섬이 있다면 사막에는 바위가 있지. 함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한 좋은 포석이야.” 트레이너의 느긋한 목소리에 꼬시레는 불만스럽게 바위로 된..

037) 10.30. 유령과 도깨비

ㅡ아이 귀하 더보기 이것은 능란이 텐트를 팔기 전, 마지막으로 사막의 밤을 오컬트 소년과 보낸 이야기다. 처음 캠프에 합류했을 적부터 유난히 커뮤니케이션이란 것을 모르는 채 정말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을 둥실둥실 다니던 소년은, 본래 애들이란 바깥에 방목해놓고 있으면 알아서 쑥 커서 돌아온다는 지론을 가진 능란의 눈에 크게 걱정할 것은 없어 보였다. 발끝이 땅에 닿고 있지는 한지 의심스럽게 흘러흘러 다니는 소년이었지만 그래 봬도 캠프에서 아주 멀어지지도 않았고─툭하면 미아가 되어 캠프도 잃어버리는 소녀나 멋대로 외박해버리는 가출소년 등과는 다르게─마치 행성의 위성쯤 되는 것처럼 땅에 아주 발붙이진 못하면서도 그 주위를 빙빙 맴도는 게 이 정도면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되겠지 태평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036) 10.28. 달걀로 바위 치기 : 모아체육관 도전

ㅡ모아체육관 챌린저 클래스 더보기 ──자, 오늘도 브리핑이다. 능란은 손뼉을 치며 자신의 포켓몬들을 모았다. 극히 최근에 파티에 합류한 꼬시레, 샤샤는 수줍음 많게 다른 포켓몬들을 피해 반쯤 모래에 묻혀 있었다. 촉촉하게 자신을 감싸주는 습지의 진흙이 아니라 물기 한 모금 없이 퍽퍽한 모래땅이라니. 여전히 속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꼬시레였지만 낯선 포켓몬들로 둘러싸인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는 게 급했다. 그런 꼬시레의 등을 간간이 긁어주며 늘봄에서도 는개에서도, 그리고 모아까지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파티에게 능란은 면목 없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기기 힘들 것 같다는 거야.” 일주일 가까이 고민한 결론이었다. 꼬시레를 데려왔으니 된 거 아니야?..

035) 10.26. 민들레 홑씨와 모래바람

ㅡ모아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올해로 갓 18살이 된 리모는 보드기 마을 출신으로 이곳 희나리 사막을 중심으로 하는 모래톱길의 로버스트 드라이버를 맡고 있었다. ‘로버스트 드라이버’란 즉 그의 짐 리더로서의 이명이면서 동시에 사막의 조난자들에겐 구원자나 다름없는 강직한 구조대원 자체를 나타내는 이름인 것이다. 그가 단순한 짐 리더로만이 아니라 이곳 모래톱길 모두의 신뢰를 받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에게 배웠다는 정비와 운전 솜씨를 뽐내는 소녀에게 핸들을 맡기고 들레씨와 능란은 각각 조수석과 뒷좌석을 차지했다. 제일 어린 친구에게 운전을 시키다니 조금 면목이 없었지만 두 사람 다 버기카 면허 같은 건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정작 소녀는 운전이 당연해 보였다. 애초에 직접 자신의 자동차를 정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