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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03.27. 의미

For. 주노 더보기 닿은 부분이 뜨거워서, 그대로 열병이 들 것만 같았다. 아득히 부푼 마음이 열기구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 ・ ・ 돌이켜보면 꽤 자주 말해왔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전부 다, 무엇이든요. 본디 너그러운 성격이었던가. 거절하지 못하는 편이었나. 그도 그렇지. 하지만 이 말의 내심은 아마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하는 괜찮아가 아니었다.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해주세요. 바라고 욕심내주면 좋겠어요. 더 많이 들려줘요. 그렇게 해서 쌓인 말들로 하여금, 당신을 우선할 수 있도록. 왜 그에겐 다 해주고 싶었을까.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하기엔 눈앞에 곧장 돌아오는 것이 달콤해 금세 의식을 빼앗기곤 했으니까. 손을 빌려달라고 하면 기쁘게 웃고, 같이 걷자고 하면 기꺼이..

94) 03.26. 함께 행복해지는 길

더보기 서머링 진화(럭키->해피너스)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더니 깨버리는 서머링을 보고 포켓몬들은 다들 경악했다. 쟤 봐. 저런 성격이었어? 아니던 것 같은데. 하지만 트레이너만큼 놀랄까. 고스트 타입이 멋대로 진화해버리는 거야 에셸도 포기한 부분이었지만─다즐링은 일반화 시키지 말라고 투덜거렸다─설마 서머링마저. 잠깐 시선이 흔들리던 에셸은 얼른 다시 웃었다. “진화하고 싶었어요? 제가 서머링의 말을 알아주지 못한 걸까요. 으응, 축하해요. 서머링.” 멋진 럭키네요. 에셸의 말에 훌쩍 덩치가 커진 서머링은 폴짝폴짝 뛰다가 그대로 에셸에게 달려가 안겼다. 이래서 모두들 진화하던 거구나. 성장한 지금이라면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지금이라면 더 잘 할 수..

93) 03.26. 행복을 찾는 과정

더보기 서머링 진화(핑복->럭키) 나른한 오후, 서머링은 에셸과 함께 챔피언로드 너머. 라이지방의 바깥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곁에는 위키링이나 저글링, 다른 포켓몬들도 함께였다. 지방의 바깥으로 나 있는 풍경은 망망대해였다. 배틀카페 출신이지만 기차 바깥을 볼 일이라곤 없던 서머링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하늘, 그 사이에 다른 부산물은 없는 드넓은 풍경에 넋을 놓았다. “바람이 차진 않아요?” 다정한 물음에 고개를 젓는다. 이 트레이너는 언제나 세심하고 주의 깊다.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그에게 배웠던가. 처음 트레이너에게 오던 날을 기억한다. 저와 비슷한 분홍색을 가진 여자는 친구와 교환한 볼에서 그를 꺼내서는 곧장 주머니에 동글동글돌을 넣어주었다...

92) 03.25. 침묵

더보기 둔치시티 의뢰::면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해봐도 좋겠지. 제군들은 엄연히 관계자이니까. 파피루스 씨와 패션 씨의 요청도 있었다고 했던가요. 본래라면 면회할 수 없을 중범죄자, 헬릭스단의 주요 인물들과 원한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신다고 했어요. 그러나 2주가 다 지나가도록, 조금 있으면 본격적인 수사와 재판이 시작되어 면회조차 불가능해지기 직전까지도 저는 좀처럼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어요. 안네와도 이야기했지만, 그들에게 굳이── 분노나 원망이나 비난이나 조소를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들을 위해 제 논리를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저를 위해서 그들에게 제 감정을 풀어놓고 싶지 않았어요. 제 감정을 쏟아내 그들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다시 그들의 빌..

91) 03.25. 최고의 티 마스터를 위하여

더보기 다즐링 친밀도 로그 허브티 카페에 다녀온 뒤 다즐링은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세상에 차는 홍차만 있지 않아. 그곳의 허브들은 좋은 품질의 것을 모아둔 건 물론이고 습도를 비롯해 찻잎 관리도 완벽하고 차를 우리기 위한 다구까지 매일매일 수준급의 관리를 하고 있던걸. 다즐링의 이상향과도 같았다. 돌아온 뒤에도 흥분해서 벤더에게 받아온 찻잎을 당장 시험해보고 싶다고 하는 통에 에셸과 다른 포켓몬들은 오밤중에 티타임을 또 가져야 했다. “다즐링은 배틀카페에서 태어났나요?” 허브티라서 다행이지. 이 야심한 시간에 홍차였다면 에셸은 꼬박 밤을 새야 했을 것이다. 늘 마시던 캐모마일에서 메뉴를 바꿔 오늘은 레몬그라스. 상큼한 맛으로 잠을 깨우며 에셸은 느긋하게 과거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 아이는 어디에서..

90) 03.24. 당신께 배운 것

더보기 마지막 리포트:: 향긋한 한 잔 허브티 카페가 마칠 시간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어요. 그리운 차임 소리와 함께 내부를 정리하던 벤더 씨는, 마치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반겨주시더라고요. “어서 오시지요, 에셸 양.” “제가 올 걸 미리 아셨나요?” 포켓몬들의 안내를 따라 앉으면 이미 티포트까지도 준비가 되어 있지 뭐예요. 아이참,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제가 대접해드리러 온 건걸요. 카페의 주인에게 되려 앉아 있으라는 부탁을 하고 허리에 손을 올려 보아요. 자, 다즐링. 우리 소중한 분께 기억에 남을 한 잔을 대접해볼까요. “저보다 앞서서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모두 초보이던 시절에 벤더 씨에게 많은 가르침을 얻기도 했고. 이후에도 뒤늦..

89) 03.24. 감사

For.파피루스 더보기 『캠프도 슬슬 막바지인걸. 이 캠프가 끝나기 전에, 지나온 흔적을 따라서 의미를 남겼던 상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때?』 언제였더라. 포켓몬 리그를 앞두고 정말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캠프의 인솔자 파피루스가 그런 말을 꺼냈다. 그의 말에 캠프 사람들은 저마다 찾아갈 상대를 떠올렸다. 의미 깊은 상대는 아주 많았고, 각각에 특별한 추억들도 있었다. 각자 떠오른 사람과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꽃피우는 동안 에셸은 가장 먼저 ‘그’를 떠올렸다. 「파피루스 님을 상대로 찾아가면 안 되나요?」 「응? 나는 찾아오지 않아도 늘 여기 있는걸!」 늘 거기 있고말고요. 저희의 시작과 끝에 서 있는 사람인걸요. 그래서다. 에셸에게 이 트레이너 캠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빼놓고 이야..

88) 03.23. 수면 아래의 빛

With.주노 더보기 살비마을 의뢰:: 바닷가의 해무기 “으응~…… 살비는 오늘도 날씨가 좋네요.” 택시에서 내리면 자연스럽게 한쪽 팔이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구름까지 닿을 듯 기지개를 켠다. 크루즈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입었던 의상은 라이지방의 최남단에 위치한 살비마을에서도 위화감 없이 어울렸다.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따라 치맛자락이 물결치듯 나풀거렸다. 걸음이 들뜬 탓일까? 밤이었다면 풍경에 녹아들었을지도 모를 치마가 쨍쨍한 햇살 아래에선 선명한 자색을 뽐내며 지느러미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복장에서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장갑을 끼지 않은 점이다. 손목에 리본 장식만 남아 있었다. 장갑채로는 손을 잡을 수 없는걸요. 굳이 이유를 말하진 않았으나 두 손이 그의 손 하나를 잡아서는 뒷걸음..

87) 03.23. 다음 곡으로

For.주노 더보기 그간의 시간은 어떻게 보면 일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시간이었어요. 3개월 동안 30명도 넘는 인원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 마치 유목민이라도 된 것처럼.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함께 움직이는 게 당연했죠. 우리의 캠프 일정은 시작과 끝이 분명했고 그 안에선 무엇이든 허락될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요. 어디든 같이 가달라든지 손을 빌려달라든지 발 닿는 곳마다 손잡고 걷는 그 일이. 캠프가 끝난 뒤에는 그래서 조금 고민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이유가 필요한 걸까 하고 말이죠. 제 마음은 이미 당신과 함께 라이지방을 한 바퀴 더 돌고 있는데, 그저 같이 보냈으면 좋겠다는 걸로는 안 되는 걸까요. 우리는 아마도 나란히 고민했겠죠. “실은, 여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