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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02.26. 노을이 담긴 잔

For. 안드레이 더보기 아직 성장할 곳이 많이 남은 꽃봉오리 같은 땅이었다, 이곳 라이지방은. 지금도 이것만으로 많이 개발되었지만 그가 어릴 적에는 더 아무것도 없이 텅 비고 척박했지. 그 환경이 너와 그에게 서로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그래서 이 땅이 꽃피길 바라며 다른 세계를 보고 왔고, 누군가는 그래서 이 땅에 뿌리 내리길 바라고 찾아와 터전을 바꾸었다. 그러나 서로 꿈꾸는 바는 달라도 결과는 같은 것으로 이어진다 생각했다. 행복이다. 다른 이가 아직 차지하지 않은 땅, 손대지 않은 파이. 헐벗은 곳을 갈고 엎어 씨 뿌리고 일궈내면 온전히 나의 성과로 삼을 수 있는 땅. 말은 매력적으로 들리나 그 길이 결코 쉽진 않았을 것이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나와 뿌리 잃은 나무처럼 배회..

65) 02.26. 살비 체육관 내방

더보기 어둠대신 시절에 다크펫나이트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바나링은 진화하고 나자 신기할 정도로 메가스톤에 관심을 뚝 끊었다. 에셀의 물건을 숨기던 버릇도 사라진 것으로 보아 메가진화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물건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었던 걸까. 에셸로서는 다행이었다. 만약 바나링이 메가스톤을 탐냈다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나 조금 막막한 기분이었기에. 메가다크펫에 대한 도감 설명은 알에서 바나링이 태어났을 시절부터 이미 몇 번이나 읽어둔 항목이었다. 메가진화를 염두에 두어서 한 것은 아니며 단지 제 포켓몬이니 빠짐없이 알아두어야지 생각했을 뿐이다. 메가진화를 할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돌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고민이 깊었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 사이에서 자란 에셸은 포켓몬..

64) 02.26. 쿠킹 타임!

더보기 살비마을 의뢰, 일일 보모! 화창하고 맑은 토요일 낮. 타도 오트를 외치는 두 트레이너가 모였다. 참고로 어제는 체육관에서 고배를 마시고 온 동지이기도 하다. “마침 기분전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목새 체육관 생각만 온종일 한 탓인지 모처럼 살비에 와서 다른 구경은 하지도 못했거든요.” 맞아요.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에요! 맞장구를 치는 비비안느는 정작 에셸과 다르게 살비에서의 생활도 상당히 만끽한 것으로 기억한다. 안네는 요령이 좋으니까요. 에셸 본인도 어디 가서 요령과 성실함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비비안느는 그 이상을 보여주곤 했다. 이게 바로 코어근육의 힘……? 이 생각을 들켰더라면 다시 운동하자는 습격이 있었겠지. 덧붙여 비비안느와 운동하기로 약속한 뒤 에셸은 착실하게 산책과..

63) 02.25. 목새 체육관 입성

더보기 어쩐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했더니 3주 만의 체육관 도전이었다. 캠프를 시작하고 3주 동안은 쉬지 않고 챌린저를 하다가 갑자기 3주를 덩그러니 쉬었더니─엄밀히 쉬지는 않았다. 에셸은 체육관이 아니더라도 바빴다─허전할 만도 했다. 특히 지난주에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도전하지 못해서 큰 아쉬움을 느꼈다. 새로운 체육관, 멋진 관장님과 잘 훈련된 포켓몬, 도전, 할 수 있는 데까지 온 힘을 다해 팔을 뻗는 경험을 눈앞에 두고 하지 못하다니. 캠프 동료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생각보다 직접 서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아 서먹할 정도였다. 멋지다……. 눈부시게 도전하고 승리를 거머쥐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마음만 가졌지. 스스로도 몰랐던 즐거움과 도전정신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지난 ..

62) 02.24. 알아가는 시간

For. 말라카이 더보기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 그렇게 마음을 굳힌 에셸은 독니를 세우고 꼭 캠프 초창기로 돌아간 듯 모든 것을 거부할 것만 같은 말라카이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 이상 다가가지 않을 테니까 거기서 들어주세요. 일종의 휴전신청이었다.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았을 뿐 그는 여전히 네 말이라면 듣기 싫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명한 거부에 자연히 한숨이 터지려 했으나 에셸은 이를 참았다. 그저 제 마음이 답답할 뿐이지만 여기서 한숨을 쉬어봤자 역효과일 것이 뻔했다. 대신 태연을 가장하여 차를 우렸다. 언젠가 그와 첫 대화를 나눌 적의 홍차였다. “어느새 제법 익숙해진 것 같더라고요.” 홍차 마시는 일을 가리켰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이트의 차를 찾는 네가 놀랍게도 자연스러워 ..

61) 02.22. 꿈을 먹을 시간

더보기 냐미링 진화 로그 (몽나->몽얌나) 호숫가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그 날 저녁, 에셸은 냐미링과 둘이서 방에 있었다. 조용한 방 안은 수많은 인형들과 꿈과 평화로 가득했다. 이곳은 정말이지 좋은 꿈을 꾸기에 제격이다. 살비마을이라는 곳 자체가 그랬다. 모든 봄이 이곳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수많은 알들이 모여 잠자는 곳, 무수한 여행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쉬어가는 곳. 저 멀리 관동지방에는 시작의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한다. 라이지방에서 그 이름을 붙인다면 살비가 아닐까. 부드러운 파도가 밀려오고 쓸려나가고, 라이지방의 어느 곳보다 따스한 기후가 각자의 시작과 휴식을 반긴다. 그래서 이곳이 알맞았는지 모른다. 냐미링은 에셸에게 달의 돌을 건네주었다. 돌의 표면을 매만진다. 벌써 사둔지 ..

60) 02.22. 상담 시간

더보기 철도도시락 사용 한숨도 못 잘 것만 같았던 하룻밤이었으나 피곤한 탓이었는지 에셸은 그대로 방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럼에도 몸은 정직해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바나링은 밤새 무얼 하고 왔는지 꼬물꼬물 얌전하게 에셸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제야 에셸은 진화한 다크펫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눈대중으로 보아도 도감보다 팔이 더 길어 보였다. 욕망의 발현이었을까. 위키링은 에셸의 곁에 있었다. 늘 그랬듯. 이제 발치에 있는 대신 멋진 샹들리에를 흔들며 둥둥 떠 있었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였다. “위키링. 바나링이 옆에 있어도 괜찮아요?” 어제는 그렇게 쫓아내더니 용케 방에 들어오게 해주었다 싶었다. 위키링은 동그랗게 빛나는 노란 눈을 내려 에셸을 응시해왔다. 더 이상 밀랍 시절의 다양..

59) 02.22. 숨겨주었다?

더보기 살비마을 의뢰, 게으름뱅이 브리더 “오트으으으으!!” 목장이 우렁차게 사라진 브리더를 찾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구슬프게 울렸다. 누구든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그 게으름뱅이 브리더를 아느냐고 묻는 아저씨가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어깨를 붙잡힌 에셸은 네, 네. 알겠어요. 제가 꼭 전달할게요. 약속을 하고야 말았다. “그럼 자네만 믿고 난 해변가로 가보겠네!” 무거운 장화걸음으로 아저씨는 씩씩하게 해변으로 향했다. 해무기를 피하고 장화 틈으로 모래가 들어가는 것도 감수하며 열성적인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가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될 즈음, 에셸은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볏단 뒤로 슥 몸을 기울였다. “아저씨 완전히 가신 것 같아요, 오트 씨.” “후아암……. 응……, 고맙…….” “볏단 정리는 언제 하려구..

58) 02.21. 좋아하는 너

더보기 보라색 불꽃이 솟구치는 광경, 이것으로 벌써 두 번째였다. 위키링, 거기서 뭘 하는 거예요?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달려가자 눈부신 진화의 빛이 에셸을 반겼다. 그와 동시에 새까만 팔 두 개가 그를 향해 뻗어 왔다. ──바나링? 모습이 달라진다고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마치 저를 끌어안고 싶기라도 한 듯 덮쳐오는 손에 무심코 팔을 내미는 순간 바로 뒤에서 인형의 팔을 붙잡는 검은 힘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가방 안에 있던 어둠의 돌이 공명했다. 그 돌은 에셸이 쓰러진 날 위키링이 직접 가져왔다. 어둠의 돌은 진화의 돌, 작은 불켜미는 이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있었다. 「위키링, 진화하고 싶나요?」 저 때문에? 제가 걱정을 끼쳐서요? 불켜미의 앞에 앉아 슬픈 얼굴을 하고 보자 위..

57) 02.21. 내 작은 아가씨야

더보기 있잖아, 에셸. 나는 진화 같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사람들은 내 설명을 보고 이 초가 생명을 빨아들인다든지, 반짝이는 건 생기를 머금은 탓이라든지, 빛이 괴이하다든지 내가 널 영계로 데려간다든지, 멋대로 떠들기 일쑤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거든. 중요한 건 너잖아. 너는 날 무서워하지 않잖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 그런 네가 맘에 들었어. 나를 보고 울지도 않고, 도리어 웃던 내 작은 아가씨. 그냥 마음에 들었어. 내 몸은 늘 초 때문에 따뜻했는데 넌 그게 좋다고 했어. 그야 그렇겠지. 넌 추위에 약하잖아. 원래도 제법 추운 그 도시가 겨울이 되면 아주 전부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이 새하얗게 변하면 너는 늘 나를 품에 안고 얼어붙어가는 바다를 구경했지. 철없는 아가씨, 내가 아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