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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7. 오늘의 일기 2월 20일

그 첫 번째, 시작은 디모넵과 목새마을목새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포켓몬드를 다시 자유롭게 해주었어요. 사실 우리집 애들은 대부분 꺼내놓고 다녀도 문제없을 크기지만요. 제일 커다란 테논이 조금, 큰 만큼이나 위험해서 주의하는 정도일까요.그래도 열차 안에서 조심조심 움직이는 거랑 바깥 공기를 쐬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요. 한 줄로 쪼르르 서서 다 같이 기지개를 쭉 켜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이곳은 라이지방의 서쪽이랑은 공기가 조금 다르구나 하는 실감도 들었어요.지도를 한 번 다시 펴보면 라이지방은 A에 가까운 모양이더라고요. 그 중 허리 부분을 험난한 서리산맥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어서 산맥의 북쪽과 남쪽의 기후가 다르고 다시 북쪽으로는 험난한 암벽의 틈틈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가운데..

086. 오늘의 아르바이트 2월 19일

그 첫 번째, 팔름 씨와 대화하기 이걸 정말 아르바이트로 해도 되는 걸까요. 어딘지 할아버지랑 담소 나눠주고 용돈 받는 기분도 드는데. 분위기는 완전 그렇지만 내용은 게다가 교수님에게 강의 듣는 학생이라서 오히려 제가 팔름 씨에게 수강료를 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어요.하지만 주시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리도 없고 대체로 이런 종류의 의뢰들은 트레이너 캠프에서 자리를 마련해서 팔름 씨를 초청해 캠프의 트레이너들에게 후학을 좀 나눠주십사 부탁드린 걸 테니까 저는 거리낌 없이 팔름 씨를 찾았답니다.“안녕하세요, 팔름 씨-!”숙소에 짐을 풀자마자요. 훈련은 아직 시작도 안 했고 관광은 지도도 펼쳐보지 않았지만 제게는 무엇보다 여기가 우선해야 할 장소였어요.앗, 여기 들르기 전에 딱 한 곳 먼저 ..

085. 오늘의 일기 2월 19일

이걸로 열차 여행은 곧 마지막이에요. 저는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기 전에 도시락을 꺼내들었어요. 어젯밤에 몰랑 씨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거든요. 모두와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거라고요. 생각해보니까 늘 모두 한 자리에 불러놓고 제 입장만 설명을 했지 아이들과 따로따로 만나서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엔트리가 여덟이나 되었다고 손이 모자란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되는 거겠죠. 한 친구, 한 친구 다 소중히 저를 믿고 따라와 준 거니까요.그래서 누굴 제일 먼저 불렀냐고 하면, ……테오예요.“요 녀석!”불러놓고 볼을 쭉 당기자 테오는 말랑말랑 토실토실한 볼이 쭉쭉 늘어나 ‘우애앵.’ 하고 엄살을 부리지 뭐예요. 이 녀석은 얼마나 엄살쟁이에 애교쟁이인지. 이미 다른 사람들을 하나,..

084. 오늘의 친구 2월 19일

: 메시 공포는 경험에서 비롯된다.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갖는 공포, 경험하였기 때문에 갖는 공포. 디모넵이 고스트 타입의 포켓몬을 향해 갖는 공포는 전자이면서 곧 후자였다. 오래도록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던 것이었다.문득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움트게 된 것은 어느 울보 고오스 덕분이었다. 영원의 숲을 기억한다.사람들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꽃을 샀다. 디모넵은 축하의 꽃다발만큼이나 애도의 꽃다발을 엮어보았다. 바구니 가득 꽃을 싣고 숲을 지났다. 비석 위로 놓인 꽃들을 볼 때면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이별의 슬픔, 애도와 추모, 기억에 새기는 것, 꽃과 함께 남기는 것, 강물에 흘려보내는 것까지.생과 사를 곱씹었다. 꽃의 일생을 보는 사람에게는 퍽 익숙한 일이었다. 의외로 근방에서 ..

083. 오늘의 일기 2월 18일

그 첫 번째, 다시 돌고 돌아 테리어젯밤 테루테루가 자리를 만들어 열린 회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에 난장판이었다. 어제 막 새로 들어온 테오는 그 모든 걸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구경하였는데, 모두가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꿀을 퍼먹는 모습이 저 녀석도 가히 난 놈이구나 테리는 생각했다.천장까지 달라붙어 전기를 쏘아대는 테논은 그야말로 하늘의 폭군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폭군 같은 이름을 붙이기에는 君이 아까우니 테리는 폭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테논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고자 테비를 보내보았지만 같이 하늘을 날 수 있는 타입이라고 해도 전기를 파지직 쏘는 테논에게 테비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테논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힘도 문제였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후퇴해버린 테비는 심지어 의기소침해지기까지..

082. 오늘의 친구 2월 18일

: 포르티스 「알고 싶어.」「……네 얘기가 듣고 싶은 거야.」그 기분을 모른다고 했다가는 거짓말이 되고 만다. 도리어 지나치게 잘 알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리길 포기하고 기탄없이 향해오는 눈을 마주했다. 모르던 것들이 보였다. 이를 테면 당신은 왜 나를 알고 싶어 하는가 따위.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호의’였다. 혹은 ‘호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부끄럼도 없이 말하자면 아무래도 당신은 나를 꽤나, 그것도 퍽, 좋아해주는 모양이었다.내가 당신에게 뭘 했다고 그러는 걸까.이곳 캠프 사람들은 참 유난스럽다. 사소한 것 한 가지를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어제오늘 인사를 했으면 친구인 거고 친구 사이에 실수할 수도 있고 사과할 수도 있지. 그깟 돌이킬 수 있는 쉬운 일 하나..

081. 오늘의 친구 2월 18일

: 올리브 사시사철 따스한 기온에 휘감긴 마을은 사람이 환경을 따라가듯 모두 친절하고 온화하였으며 단란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마을에서 나고 자란 디모넵은 만나면 친구가 되고 함께 어울려 놀고 그렇게 시간을 쌓는 일을 단 한 번도 어렵게 느껴본 적 없었다. 친구요? 마을의 모두가 친구예요.누군가 묻는다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그것이 당연한 곳이었다.그런 디모넵에게 올리브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교류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 상대였다.어째서 그렇게 겁을 내요? 무엇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왜 의지해주지 않지. 기대주면 좋을 텐데. 혼자서 속앓이 하지 말고 좀 더 말해주세요.제가 가진 얕고 서툰 방식의 교류. 상대가 가진 상처의 깊이를 채 가늠하지 못한 채 야트막한 삽을 쥐고 ..

080. 오늘의 일기 2월 17일

그 첫 번째, 테리의 경우테리는 대박 짱 고참 포켓몬이다. 체리베리 플라워샵에서 14년을 살았고─물론 꽃가게엔 테리보다 오래 묵은 포켓몬들도 많지만─디모넵과 라이지방에 여행을 온 뒤로 만난 새 친구들은 모두 테리를 거쳤다.거창하게 교육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설명을 하자면 갓 야생에서 인간의 손에 잡힌 포켓몬들에게 인간 사회에 어떻게 섞여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에 가까웠다. 디모넵과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따라온 포켓몬들은 테리의 설명을 듣고 차근차근 이해해갔다.모두가 모두 잘 된 건 아니었다. 테토의 경우에는 그냥 테리를 싫어했다. 귀여운 자신을 위협하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고 자기가 꿀을 탐내는 걸 방해하는 포켓몬으로 여기기도 했고 트레이너의 제 1 포켓몬 자리라는 걸 아니꼽게..

079. 오늘의 어드바이스 2월 17일

글쎄 있죠, 아빠가 다라마을부터는 꿀 리필을 안 해주겠다는 거 있죠. 몰랑 씨에게 매주 꿀을 받아가는 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거랑 별개로 제가 우리집 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니까 꼬박꼬박 보내줘 놓고, 저번에 갑자기「택배비가 더 나오겠다, 욘석아!」라는 거예요.그야 매번 매번 꿀 한 통 보내는 택배비가 저렴하진 않지만요. 마을에서 마을도 아니고 지방을 넘나들어야 하니까요.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그렇지. 치사하지 않아요? 이쪽은 가뜩이나 입이 늘었는데 말이에요.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꿀 한 통 매주 보내주는 게 뭐 그리, 그래요. 돈이 좀 많이 나갈 거예요. 우리집이 유복한 집도 아니고 내가 참아야지. 응.저는 빠르게 이해하고 염치를 무릅쓰고 오늘도 몰랑 씨를 찾았어요. 그리고 몰랑 씨에게 조금만 더 ..

078. 오늘의 일기 2월 15일

벌써 다라마을, 여정의 반을 왔어요. 챔피언 로드도 코앞에서 보았고 어느새 챔피언도 만나고요. 저는 이제 엘리트 트레이너가 되었어요. 포켓리스트에 제 트레이너 프로필을 검색하면 짠, 하고 보이는 거예요. 더 이상 초짜 트레이너가 아니라고요.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저는 왜 아직도 초짜 새내기 어설픈 모자라는 트레이너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일까요.“테비.”“구루룩.”“테비야.”“구르르륵.”“테비이이이.”“구르르륵, 퓌이!”옛날 아직 철없던 어린 시절에─물론 저는 지금도 어리지만─아빠한테 저도 동생이 갖고 싶다고 조른 적이 있어요. 외롭기도 했고 동생이 생겨서 의젓하고 멋진 형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 때 아빠가 제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너 하나로도 힘든데 동생까지? 감당 못한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