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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 오늘의 친구 2월 15일

: 포르티스 제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참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다면 구태여 그것을 恥部라 일컫지도 않겠지. 그러나 인간이란 굉장히 편리한 족속이어서 치부를 드러내고 상처를 긁어내길 반복하다 보면 차츰 무뎌져 갔다. 더는 부끄러움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이를 극복이라 해도 될까. 아니면 이것이 바로 어른들이 말하던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일까.“왜 무서운지, 물어도 되냐.”그 질문 앞에서 아이는 ‘아.’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 있어서 더는 고통도 공포도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남은 것은 쓸쓸함과 이제는 부정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현실뿐이다.그래서 아이는 표현을 달리하기로 했다. 이제 슬슬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지겨우니까 한 겹 더 벗겨내 볼까요? 공포로 딱지 앉아버린 상처를 뜯어내고 그..

076. 오늘의 친구 2월 14일

: 와이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예요. 성 밸런타인이 이러쿵저러쿵 포켓몬과 저러쿵그러쿵 한 날이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고요. 꽃가게 4년 차, 밸런타인이라고 하면 꽃다발이 잘 팔리는 대목인 날이었어요.초콜릿은 안 줬냐고요? 그야 늘 줬죠. 아빠한테. 옆집 칠리랑 다른 꼬마들에게도 나눠주고요. 하지만 거의 습관처럼 주곤 했어요. 테리는 그래서 필요 없다고도 했어요.‘오늘 초콜릿을 주고받지 않아도 디모넵의 마음은 알고 있어요.’였는지‘마음이 담기지 않은 걸 굳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성의 없이 주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초콜릿을 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마음을 담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그래서 와이가 이런 날도 나쁘지 않구나 했을 때도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075. 오늘의 일기 2월 13일

다라마을에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요. 요즘은 어딜 가나 퀵이 유행이더라고요. 오드리 씨도 필요한 옷은 인터넷 주문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열차 안에서 미리 대비하기로 했어요. 무엇이냐 하면, 바로바로……붙임머리!라는 거예요. 에, 뜬금없이 웬 붙임머리? 싶죠. 와이나 엘리링 씨는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어요. 두 사람 정말 확고한 숏컷 파더라고요. 저도 짧은 머리를 더 좋아하기는 해요. 아무래도 길면 거추장스러워서 말이죠. 6살인가 7살 때까지는 멋모르고 그냥 기르는 대로 기르며 다녔었는데 한 번 짧게 자르고 나서부터는 그 편한 걸 잊지 못해서 쭉 짧은 채였던 것 같아요.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그럭저럭 단발 수준이었는데 엄마의 숏컷을 보니까 저게 더 멋있고 시원하다 싶더라고요. 아, 또..

074. 오늘의 아르바이트 2월 13일

그 첫 번째, 엘리트 트레이너 에밀 씨의 의뢰 “우와아, 테리. 엠페르트야.”‘엠페르트예요, 디모넵.’우리는 에밀 씨와 프랴리크를 앞에 두고 우와아, 와아앙, 감탄하기 바빴어요. 아무래도 신오 출신은 신오의 포켓몬에게 애착이 가기 마련이잖아요? 토대부기라거나 초염몽이라거나 엠페르트라거나, 정말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이거든요.특히 엠페르트의 투구 같기도 하고 왕관 같기도 한 저 아름다운 강철의 삼지창은 정말, 환상적이죠. 고고한 황제펭귄. 강철과 물의 환상의 콜라보! 너무너무 강하고 아름다운 거예요. 우웃, 날개… 만져보고 싶다. 뺨도…….제가 손가락을 꼼질꼼질하며 눈치를 보자 에밀 씨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어요. 그보다 여기 빨리 온 목적을 끝내라고요. 프랴리크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좋아요. 그럼 저..

073. 오늘의 일기 2월 12일

새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곧장 쇼핑부터 하고 이것저것 볼일을 마치고 나서야 미적미적 포켓리스트를 열었어요. 아빠랑 마지막으로 대화한 건 어젯밤이었는데요. 곧 다음 마을에 도착하지? 도착하면 또 목소리 들려주겠니? 하는 아주 평범한 내용이었어요.그야 전화는 매일 안 해도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으니까요. 어제는 곧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있어서 예약이 너무 많아 정신없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네가 없으니까 얼마나 꼬이던지. 테리도 없고 말이다. 테리는 우리집 챙기기 대장이거든요. 맨날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제가 잃어버리거나 깜빡 흘린 걸 주워주었는데 꽃집에서 일할 때는 아빠 몫도 해줬어요.떠올리고 있으려니 조금 그리운 기분도 들어요. 저는 혼자 실실 웃으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요.“아빠? 이제 다라마을 ..

072. 오늘의 포켓몬 2월 12일

전지충이의 이름이 테논이 되었다. 진화하고 나면 투구뿌논이라고 하는 멋들어진 부유 특성의 포켓몬이 되는 것을 예견해 지어준 이름이었다. 테논은 자신의 이름이 맘에 드는지 개폐장치를 닮은 입을 철컹, 철컹거리며 어서 날아오를 꿈에 부풀었다.……그런데 이 트레이너는 자기를 데려오고 나서부터 내내 쿠션 대용으로 품에서 놓지 않으며 ‘정말 진화하고 싶어? 진화하지 않아도 나랑 여행은 갈 수 있는데. 날고 싶으면 내가 이렇게 가끔 비행기 태워줄게. 어때?’ 같은 소리나 하는 게 아닌가.이건 사기 계약이다. 나는 어서 하늘을 날아오를 날만을 기대했는데. 테논은 심란해져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자기 전류를 이용해 포켓몬 권리 센터를 찾아보았다. 마침 옆에 로토무가 날아와 검색을 도와주었다. 로토무는 어느 집 친구인지..

071. 오늘의 일기 2월 11일

그 첫 번째, 테리의 경우테리는 디모넵의 엔트리의 가장이에요. 동시에 디모넵의 파티의 가장이기도 해요. 엔트리와 파티의 차이가 뭐냐고요? 엔트리는 포켓몬들만, 파티는 디모넵을 포함해서예요.즉, 테리는 최근 기운이 없고 시무룩한 디모넵에게 힘을 북돋아줄 필요성이 있는 거예요. 어제 막 새 친구를 사귄 디모넵은 품에 전지충이를 꾹 안은 채 가끔 전기자극이 올 때마다 파르르, 웃, 헤헤, 하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웃곤 하던데 저렇게 두어도 되는 걸까 걱정이 되는 것 있죠.풀 포켓몬은 말이죠. 여러 약초나 독초, 다양한 가루들에 대해서도 박식한 편이랍니다. 애석하게도 테리는 가루 종류의 기술을 배우지 못하지만요.‘그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투덜투덜.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요.그래서 테리는 파티..

070. 오늘의 포켓몬 2월 10일

저는 가끔 트레이너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새로운 포켓몬 소식을 들으면 와다닷 정보를 쏟아내는데 저는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제가 아는 거라곤 신오의 포켓몬들, 그 중에서도 풀 포켓몬 특화에 다른 친구는 모르는 아이도 많아요. 그래서 여기 이런 포켓몬을 만날 수 있대! 하면 그 때부터 포켓리스트로 바쁘게 찾아보곤 하거든요.그러다가 이번에 조금 관심이 간 건 휴게실 2호칸에서 나온다던 친구들이었어요. 전기 타입, 지금의 저한테는 없는 타입이라서요. 되도록 모든 타입의 친구들을 고루고루 사귀고 싶었거든요. 그 때 제 눈에 들어온 게 전지충이였어요. 신오에선 본 적 없는 친구인데, 네모나고 말랑말랑한 게,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요?아, 지금 테리가 한숨을 쉰 것 같은데. 귀여운 포켓몬..

069. 오늘의 어드바이스 2월 10일

테토는 오늘을 기억하고 있다. 매주 돌아오는 월요일. 일주일에 한 번. 몰랑에게 꿀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몰랑에게 받아오는 꿀의 1/2은 거의 정해진 것처럼 테토의 몫이었다. 처음 몇 번은 말리기도 하고 떼어놓기도 하고 뚜껑을 잠가놓거나 갖은 수를 써서 테토에게 꿀 제한을 하려고 했지만, 이제 천하장사가 된 테토를 물리적으로 말리기란 디모넵에게 불가능했고 그 뒤로 테토는 마음껏 꿀을 제 것 다루듯 먹고 있었다.그런데 어라, 이상하지. 평소 같으면 몰랑에게 꿀을 받으러 갈 디모넵인데 오늘은 어째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내 누워만 있었다. 가끔 훌쩍이기도 했다.테토도 분위기라는 것을 읽을 줄 안다. 어쩐지 바깥의 다른 칸들에서는 분위기 대신 위기가 이어지기도 했던 것 같지만 테토는 이 방의 분위기를 읽어냈..

068. 오늘의 일기 2월 10일

「아빠랑, 정말 이혼할 거예요?」「 」귓속에 물이 찬 것처럼 소리가 먹먹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달리아 씨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도망치고자 한다면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 않았다. 체념이었다. 내가 여기서 외면한다 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는.도망치고 외면하고 발버둥치고, 모두 제법 힘이 드는 일이다.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벌벌 떠는 건 많은 체력을 소모했고 우는 일조차 진이 빠졌다. 화르륵 타오르던 불길이 그만큼 빠르게 소진되어 재만 남은지도 몰랐다.재속을 손가락으로 만지작만지작하다가 피식 웃었다. 숯검댕이인 기분은 여전히 울적하고 할 수만 있다면 더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온몸의 수분이 쏙 빠져 미라가 되어버리도록 눈물을 짜내며 슬퍼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미 너무 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