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157

073. 오늘의 일기 2월 12일

새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곧장 쇼핑부터 하고 이것저것 볼일을 마치고 나서야 미적미적 포켓리스트를 열었어요. 아빠랑 마지막으로 대화한 건 어젯밤이었는데요. 곧 다음 마을에 도착하지? 도착하면 또 목소리 들려주겠니? 하는 아주 평범한 내용이었어요.그야 전화는 매일 안 해도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으니까요. 어제는 곧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있어서 예약이 너무 많아 정신없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네가 없으니까 얼마나 꼬이던지. 테리도 없고 말이다. 테리는 우리집 챙기기 대장이거든요. 맨날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제가 잃어버리거나 깜빡 흘린 걸 주워주었는데 꽃집에서 일할 때는 아빠 몫도 해줬어요.떠올리고 있으려니 조금 그리운 기분도 들어요. 저는 혼자 실실 웃으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요.“아빠? 이제 다라마을 ..

072. 오늘의 포켓몬 2월 12일

전지충이의 이름이 테논이 되었다. 진화하고 나면 투구뿌논이라고 하는 멋들어진 부유 특성의 포켓몬이 되는 것을 예견해 지어준 이름이었다. 테논은 자신의 이름이 맘에 드는지 개폐장치를 닮은 입을 철컹, 철컹거리며 어서 날아오를 꿈에 부풀었다.……그런데 이 트레이너는 자기를 데려오고 나서부터 내내 쿠션 대용으로 품에서 놓지 않으며 ‘정말 진화하고 싶어? 진화하지 않아도 나랑 여행은 갈 수 있는데. 날고 싶으면 내가 이렇게 가끔 비행기 태워줄게. 어때?’ 같은 소리나 하는 게 아닌가.이건 사기 계약이다. 나는 어서 하늘을 날아오를 날만을 기대했는데. 테논은 심란해져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자기 전류를 이용해 포켓몬 권리 센터를 찾아보았다. 마침 옆에 로토무가 날아와 검색을 도와주었다. 로토무는 어느 집 친구인지..

071. 오늘의 일기 2월 11일

그 첫 번째, 테리의 경우테리는 디모넵의 엔트리의 가장이에요. 동시에 디모넵의 파티의 가장이기도 해요. 엔트리와 파티의 차이가 뭐냐고요? 엔트리는 포켓몬들만, 파티는 디모넵을 포함해서예요.즉, 테리는 최근 기운이 없고 시무룩한 디모넵에게 힘을 북돋아줄 필요성이 있는 거예요. 어제 막 새 친구를 사귄 디모넵은 품에 전지충이를 꾹 안은 채 가끔 전기자극이 올 때마다 파르르, 웃, 헤헤, 하고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웃곤 하던데 저렇게 두어도 되는 걸까 걱정이 되는 것 있죠.풀 포켓몬은 말이죠. 여러 약초나 독초, 다양한 가루들에 대해서도 박식한 편이랍니다. 애석하게도 테리는 가루 종류의 기술을 배우지 못하지만요.‘그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투덜투덜.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요.그래서 테리는 파티..

070. 오늘의 포켓몬 2월 10일

저는 가끔 트레이너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새로운 포켓몬 소식을 들으면 와다닷 정보를 쏟아내는데 저는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제가 아는 거라곤 신오의 포켓몬들, 그 중에서도 풀 포켓몬 특화에 다른 친구는 모르는 아이도 많아요. 그래서 여기 이런 포켓몬을 만날 수 있대! 하면 그 때부터 포켓리스트로 바쁘게 찾아보곤 하거든요.그러다가 이번에 조금 관심이 간 건 휴게실 2호칸에서 나온다던 친구들이었어요. 전기 타입, 지금의 저한테는 없는 타입이라서요. 되도록 모든 타입의 친구들을 고루고루 사귀고 싶었거든요. 그 때 제 눈에 들어온 게 전지충이였어요. 신오에선 본 적 없는 친구인데, 네모나고 말랑말랑한 게,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요?아, 지금 테리가 한숨을 쉰 것 같은데. 귀여운 포켓몬..

069. 오늘의 어드바이스 2월 10일

테토는 오늘을 기억하고 있다. 매주 돌아오는 월요일. 일주일에 한 번. 몰랑에게 꿀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몰랑에게 받아오는 꿀의 1/2은 거의 정해진 것처럼 테토의 몫이었다. 처음 몇 번은 말리기도 하고 떼어놓기도 하고 뚜껑을 잠가놓거나 갖은 수를 써서 테토에게 꿀 제한을 하려고 했지만, 이제 천하장사가 된 테토를 물리적으로 말리기란 디모넵에게 불가능했고 그 뒤로 테토는 마음껏 꿀을 제 것 다루듯 먹고 있었다.그런데 어라, 이상하지. 평소 같으면 몰랑에게 꿀을 받으러 갈 디모넵인데 오늘은 어째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내 누워만 있었다. 가끔 훌쩍이기도 했다.테토도 분위기라는 것을 읽을 줄 안다. 어쩐지 바깥의 다른 칸들에서는 분위기 대신 위기가 이어지기도 했던 것 같지만 테토는 이 방의 분위기를 읽어냈..

068. 오늘의 일기 2월 10일

「아빠랑, 정말 이혼할 거예요?」「 」귓속에 물이 찬 것처럼 소리가 먹먹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달리아 씨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도망치고자 한다면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 않았다. 체념이었다. 내가 여기서 외면한다 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는.도망치고 외면하고 발버둥치고, 모두 제법 힘이 드는 일이다.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벌벌 떠는 건 많은 체력을 소모했고 우는 일조차 진이 빠졌다. 화르륵 타오르던 불길이 그만큼 빠르게 소진되어 재만 남은지도 몰랐다.재속을 손가락으로 만지작만지작하다가 피식 웃었다. 숯검댕이인 기분은 여전히 울적하고 할 수만 있다면 더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온몸의 수분이 쏙 빠져 미라가 되어버리도록 눈물을 짜내며 슬퍼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미 너무 울어 ..

067. 오늘의 기술 2월 8일

오늘은 처음으로 테비의 날개에 의지해서 하늘을 날아보는 날이에요. 물론 테비 혼자에게만 의지하는 건 아니지만요. 공중날기 택시를 부르기로 했어요. 아직 피죤인 테비에게 제 무게를 다 부탁하는 것도 미안하고, 니켈 씨와 함께 이동하기로 했거든요.니켈 씨는 이따가 모의전도 해야 해서 잠깐 왔다가 저보다 먼저 돌아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왜 북새마을까지 같이 돌아가느냐면……,실은 그저께 잠깐 봐버렸어요. 니켈 씨가 피죤에게 감아주었던 초보 배지를 푸는 걸요.니켈 씨는 포켓몬에게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요. 초반의 니켈 씨는 트레이너 캠프에 와서도 쭉 회사원 같아서, 자신의 포켓몬들과도 어딘가 비즈니스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마 초창기의 구구가 니켈 씨를 따르지 못하고 활화르바와도 경쟁을 하던 ..

066. 오늘의 일기 2월 8일

엄마에게 먼저 연락이 왔어요. 잠시 보지 않겠냐고요. 제 포켓리스트는 라이지방에 온 뒤로 엄마에게 끝내 한 번도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는데 엄마가 먼저 연락해올 줄이야. 정말 놀랐지 뭐예요.재밌는 건 라이지방에 오기 전까지의 이력을 보면 전부 제가 먼저 했던 연락이라는 거예요. 새해가 되면, 가족의 생일이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엄마는 답장을 해줄 때도 있었고 해주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대부분이 참 의무적이다 싶은 답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축하합니다.’ ‘알겠습니다.’ 라니.그런데 그런 엄마의 답장을 두고 서운하단 티 한 번 못 냈어요. 그랬다가는 엄마가 귀찮아할까 봐요. 더는 이런 답장도 안 해줄까봐.아마 엄마를 믿을 수 없던 거겠죠. 엄마가..

065. 오늘의 어드바이스 2월 7일

“아무 씨, 아무 씨. 이거 보세요!”저는 허둥지둥 나무돌이가 된 테이를 꼭 안고 아무 씨에게 자랑하러 달려갔어요. 아무 씨랑 겟코랑 한 특훈에서 무언가 깨달은 게 있었는지 쑥 자라버린 거예요, 테이는 조금 더 커진 자기 몸이 무척 마음에 든 것 같아요. 팔을 휘둘러보거나 빠르게 점프해보거나, 전처럼 벽을 타고 느릿느릿 걷는 대신 민첩하고 소리를 죽여 걷게 되었어요.저는 겟코와 아무 씨에게 이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겟코에게 꼭 수제자처럼 수업을 받은 테이니까요. 겟코 앞에 서서 이만큼 자랐다고 으쓱이며 그러니까 새로운 걸 가르쳐달라는 테이의 모습은 어쩜 이렇게 흐뭇하던지요. 상냥한 선배 노릇을 해주는 겟코를 두고 저는 아무 씨 옆에 풀썩 앉았어요.곧 기차 여행을 한다고 하죠. 테이랑 먹으려..

064. 오늘의 일기 2월 7일

엄마를 만나고 왔어요. 30분 전의 일이에요.뭔가 짜안~ 다짜고짜 클라이맥스입니다. 같네요. 저도 엄청 당황스러워요. 대화는 한 마디도 안 했어요.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쳤거든요. 요즘 대화하다 말고 도망치는 몹쓸 버릇이 든 것 같지 뭐예요.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하고 마음에 새겨두기라도 해야 할까요.오늘도 변함없이 테리는 제 품안이었어요. 이렇게 테리를 껴안고 있으면 제 고동소리가 테리를 타고 두근, 두근하고 커다랗게 울리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진정이 되곤 해요. 무슨 효과라고 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초조하거나 진정이 안 되거나 이럴 때 저럴 때 이어폰 같은 걸 꽂아서 바깥 소리를 차단하거나 자기 맥박을 들으면 나아진다고요.테리에게 코를 부비고 있으면 꼼지락거리며 테리의 짧은 발이 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