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157

083. 오늘의 일기 2월 18일

그 첫 번째, 다시 돌고 돌아 테리어젯밤 테루테루가 자리를 만들어 열린 회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에 난장판이었다. 어제 막 새로 들어온 테오는 그 모든 걸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구경하였는데, 모두가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꿀을 퍼먹는 모습이 저 녀석도 가히 난 놈이구나 테리는 생각했다.천장까지 달라붙어 전기를 쏘아대는 테논은 그야말로 하늘의 폭군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폭군 같은 이름을 붙이기에는 君이 아까우니 테리는 폭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테논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고자 테비를 보내보았지만 같이 하늘을 날 수 있는 타입이라고 해도 전기를 파지직 쏘는 테논에게 테비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테논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힘도 문제였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후퇴해버린 테비는 심지어 의기소침해지기까지..

082. 오늘의 친구 2월 18일

: 포르티스 「알고 싶어.」「……네 얘기가 듣고 싶은 거야.」그 기분을 모른다고 했다가는 거짓말이 되고 만다. 도리어 지나치게 잘 알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리길 포기하고 기탄없이 향해오는 눈을 마주했다. 모르던 것들이 보였다. 이를 테면 당신은 왜 나를 알고 싶어 하는가 따위.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호의’였다. 혹은 ‘호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부끄럼도 없이 말하자면 아무래도 당신은 나를 꽤나, 그것도 퍽, 좋아해주는 모양이었다.내가 당신에게 뭘 했다고 그러는 걸까.이곳 캠프 사람들은 참 유난스럽다. 사소한 것 한 가지를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어제오늘 인사를 했으면 친구인 거고 친구 사이에 실수할 수도 있고 사과할 수도 있지. 그깟 돌이킬 수 있는 쉬운 일 하나..

081. 오늘의 친구 2월 18일

: 올리브 사시사철 따스한 기온에 휘감긴 마을은 사람이 환경을 따라가듯 모두 친절하고 온화하였으며 단란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마을에서 나고 자란 디모넵은 만나면 친구가 되고 함께 어울려 놀고 그렇게 시간을 쌓는 일을 단 한 번도 어렵게 느껴본 적 없었다. 친구요? 마을의 모두가 친구예요.누군가 묻는다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그것이 당연한 곳이었다.그런 디모넵에게 올리브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교류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 상대였다.어째서 그렇게 겁을 내요? 무엇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왜 의지해주지 않지. 기대주면 좋을 텐데. 혼자서 속앓이 하지 말고 좀 더 말해주세요.제가 가진 얕고 서툰 방식의 교류. 상대가 가진 상처의 깊이를 채 가늠하지 못한 채 야트막한 삽을 쥐고 ..

080. 오늘의 일기 2월 17일

그 첫 번째, 테리의 경우테리는 대박 짱 고참 포켓몬이다. 체리베리 플라워샵에서 14년을 살았고─물론 꽃가게엔 테리보다 오래 묵은 포켓몬들도 많지만─디모넵과 라이지방에 여행을 온 뒤로 만난 새 친구들은 모두 테리를 거쳤다.거창하게 교육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설명을 하자면 갓 야생에서 인간의 손에 잡힌 포켓몬들에게 인간 사회에 어떻게 섞여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에 가까웠다. 디모넵과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따라온 포켓몬들은 테리의 설명을 듣고 차근차근 이해해갔다.모두가 모두 잘 된 건 아니었다. 테토의 경우에는 그냥 테리를 싫어했다. 귀여운 자신을 위협하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고 자기가 꿀을 탐내는 걸 방해하는 포켓몬으로 여기기도 했고 트레이너의 제 1 포켓몬 자리라는 걸 아니꼽게..

079. 오늘의 어드바이스 2월 17일

글쎄 있죠, 아빠가 다라마을부터는 꿀 리필을 안 해주겠다는 거 있죠. 몰랑 씨에게 매주 꿀을 받아가는 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거랑 별개로 제가 우리집 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니까 꼬박꼬박 보내줘 놓고, 저번에 갑자기「택배비가 더 나오겠다, 욘석아!」라는 거예요.그야 매번 매번 꿀 한 통 보내는 택배비가 저렴하진 않지만요. 마을에서 마을도 아니고 지방을 넘나들어야 하니까요.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그렇지. 치사하지 않아요? 이쪽은 가뜩이나 입이 늘었는데 말이에요.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꿀 한 통 매주 보내주는 게 뭐 그리, 그래요. 돈이 좀 많이 나갈 거예요. 우리집이 유복한 집도 아니고 내가 참아야지. 응.저는 빠르게 이해하고 염치를 무릅쓰고 오늘도 몰랑 씨를 찾았어요. 그리고 몰랑 씨에게 조금만 더 ..

078. 오늘의 일기 2월 15일

벌써 다라마을, 여정의 반을 왔어요. 챔피언 로드도 코앞에서 보았고 어느새 챔피언도 만나고요. 저는 이제 엘리트 트레이너가 되었어요. 포켓리스트에 제 트레이너 프로필을 검색하면 짠, 하고 보이는 거예요. 더 이상 초짜 트레이너가 아니라고요.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저는 왜 아직도 초짜 새내기 어설픈 모자라는 트레이너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일까요.“테비.”“구루룩.”“테비야.”“구르르륵.”“테비이이이.”“구르르륵, 퓌이!”옛날 아직 철없던 어린 시절에─물론 저는 지금도 어리지만─아빠한테 저도 동생이 갖고 싶다고 조른 적이 있어요. 외롭기도 했고 동생이 생겨서 의젓하고 멋진 형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 때 아빠가 제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너 하나로도 힘든데 동생까지? 감당 못한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요. ..

077. 오늘의 친구 2월 15일

: 포르티스 제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참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다면 구태여 그것을 恥部라 일컫지도 않겠지. 그러나 인간이란 굉장히 편리한 족속이어서 치부를 드러내고 상처를 긁어내길 반복하다 보면 차츰 무뎌져 갔다. 더는 부끄러움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이를 극복이라 해도 될까. 아니면 이것이 바로 어른들이 말하던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일까.“왜 무서운지, 물어도 되냐.”그 질문 앞에서 아이는 ‘아.’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 있어서 더는 고통도 공포도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남은 것은 쓸쓸함과 이제는 부정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현실뿐이다.그래서 아이는 표현을 달리하기로 했다. 이제 슬슬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지겨우니까 한 겹 더 벗겨내 볼까요? 공포로 딱지 앉아버린 상처를 뜯어내고 그..

076. 오늘의 친구 2월 14일

: 와이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예요. 성 밸런타인이 이러쿵저러쿵 포켓몬과 저러쿵그러쿵 한 날이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고요. 꽃가게 4년 차, 밸런타인이라고 하면 꽃다발이 잘 팔리는 대목인 날이었어요.초콜릿은 안 줬냐고요? 그야 늘 줬죠. 아빠한테. 옆집 칠리랑 다른 꼬마들에게도 나눠주고요. 하지만 거의 습관처럼 주곤 했어요. 테리는 그래서 필요 없다고도 했어요.‘오늘 초콜릿을 주고받지 않아도 디모넵의 마음은 알고 있어요.’였는지‘마음이 담기지 않은 걸 굳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성의 없이 주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초콜릿을 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마음을 담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그래서 와이가 이런 날도 나쁘지 않구나 했을 때도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075. 오늘의 일기 2월 13일

다라마을에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요. 요즘은 어딜 가나 퀵이 유행이더라고요. 오드리 씨도 필요한 옷은 인터넷 주문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열차 안에서 미리 대비하기로 했어요. 무엇이냐 하면, 바로바로……붙임머리!라는 거예요. 에, 뜬금없이 웬 붙임머리? 싶죠. 와이나 엘리링 씨는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어요. 두 사람 정말 확고한 숏컷 파더라고요. 저도 짧은 머리를 더 좋아하기는 해요. 아무래도 길면 거추장스러워서 말이죠. 6살인가 7살 때까지는 멋모르고 그냥 기르는 대로 기르며 다녔었는데 한 번 짧게 자르고 나서부터는 그 편한 걸 잊지 못해서 쭉 짧은 채였던 것 같아요.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그럭저럭 단발 수준이었는데 엄마의 숏컷을 보니까 저게 더 멋있고 시원하다 싶더라고요. 아, 또..

074. 오늘의 아르바이트 2월 13일

그 첫 번째, 엘리트 트레이너 에밀 씨의 의뢰 “우와아, 테리. 엠페르트야.”‘엠페르트예요, 디모넵.’우리는 에밀 씨와 프랴리크를 앞에 두고 우와아, 와아앙, 감탄하기 바빴어요. 아무래도 신오 출신은 신오의 포켓몬에게 애착이 가기 마련이잖아요? 토대부기라거나 초염몽이라거나 엠페르트라거나, 정말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이거든요.특히 엠페르트의 투구 같기도 하고 왕관 같기도 한 저 아름다운 강철의 삼지창은 정말, 환상적이죠. 고고한 황제펭귄. 강철과 물의 환상의 콜라보! 너무너무 강하고 아름다운 거예요. 우웃, 날개… 만져보고 싶다. 뺨도…….제가 손가락을 꼼질꼼질하며 눈치를 보자 에밀 씨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어요. 그보다 여기 빨리 온 목적을 끝내라고요. 프랴리크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좋아요. 그럼 저..